명성의 싹은 욕심이고, 명예의 싹은 부끄러움이다

세월 가니 보이네 ㉓

by 김승월

주목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미디어에 휩싸여 살다 보니, 내 이름과 내 얼굴을 들이밀고 싶어 안달하는 이가 많다. ‘좋아요’ 숫자에 마음이 오르내리고, 명성은 어느새 일상의 목표가 되었다.


명성을 쫓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명예라는 말은 점점 빛을 잃는 듯하다. 명성을 얻은 사람들이 명예롭지 않은 일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장면을 너무 자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저녁, 텔레비전을 보다가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말하는 얼굴들이 나왔다. 녹음되고 녹화된 것들이 그대로 민낯을 보여주었는데도, 여전히 고개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부끄럽지 않은 걸까.


명성은 우리 곁에 가깝지만, 명예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나만 해도 ‘명예’라는 말을 떠올리면 전장에서 순국한 이들, 자신을 희생해 남을 살린 의인들이 먼저 떠오른다. 빛나는 훈장과 장엄한 추모사 같은 이미지들이 겹쳐진다.


형극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굽히지 않은 고귀한 뜻이나 부끄러워 차마 살아남지 못하고 죽음을 택한 이들의 마음도 떠오른다. 명예란 그렇게,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숭고한 장면으로만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명예를 역사책 속 한 대목쯤으로 밀어 두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명예를 떠올리게 된 것은, 장한 분들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 때문이다.

저지른 잘못이 기록으로 남아 있고,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데도 태연한 얼굴로 서 있는 사람들. 명성으로 올라선 자리에, 명예 없이 머무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명예란 떳떳함이고, 자랑스러움이며, 스스로에게 고개를 들 수 있는 마음이다. 저들에게 명예는 거추장스러운 장식쯤일 것이다. 뒤쫓은 것은 명성이지, 명예가 아니었을 테니까. 그런데도 잘 살고, 잘 나가고, 여전히 불린다. 명예는 정말 소용없는 것일까.


그 생각이 오랫동안 나를 휘감았다. 그리고 나에게 조용히 되묻게 되었다. 명예가 쓸모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붙들고 살고 있는지를.


명성은 잠시 펼쳐졌다 사그라지는 불꽃이지만, 명예는 꺼지지 않고 빛나는 불이다. 한때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이 민낯을 드러내며 속절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이미 수없이 보아왔다. 명예 없는 명성은 신기루처럼 흔들리다 사라진다.


명예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부끄럽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 아닐까.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그런 마음이 남아 있는 한 명예는 여전히 소중하다.


세월이 가니, 점점 또렷해 보인다. 명성의 싹은 욕심이고, 명예의 싹은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욕심을 버려야 명성을 쫓지 않게 되고, 부끄러움을 알 때야 비로소 명예를 따르게 된다는 것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접 부끄럼 없기를 바랬던 시인의 마음,

그런 마음이 자라서 명예를 꽃피우지 않을까.

alaric-duan-mL0y6_AJXJU-unsplash.jpg By Alaric Duan on Unsplash

브런치북 <세월가니 보이네>

다음 주에는 넓게, 멀리 내다보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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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겪고 나서 깨달은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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