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가니 보이네 ㉒
“젊어서 배워야 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들 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언제 배우느냐보다 무엇을 배우느냐가 아닐까.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朝聞道 夕死可矣
오래 사는 것보다, 제대로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 아닌가. 삶의 방향을 분명히 이해했다면, 남은 시간이 길든 짧든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배움의 기회를 제때 갖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난 때문에, 여성이기에, 가족을 돌보느라 때를 놓치고, 인생의 한참을 돌아선 뒤에야 책상 앞에 앉는 분들도 있다.
지난 2월 1일, 영등포 늘푸름학교 중학과정을 졸업한 정옥임 할머니의 말이다.
“옛날에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딸들은 안 보냈잖아요. 그런 아쉬움이 제일 커요."(연합뉴스, 26.2.1)
올해 이 학교 졸업생 45명의 평균 나이는 74세. 접어야 했던 공부를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돌본 뒤에야 다시 꺼내 들었다. 이분들은 늦게 배운 사람들이 아니다. 늦게 기회를 만난 사람들이다.
배움은 꼭 결핍의 자리에서만 시작되지는 않는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가 내려온 뒤에도, 배움은 이어진다.
권노갑 전 국회의원은 90대의 나이에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문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미 정치의 꼭대기까지 가 본 사람이었다. 명예도, 지위도 더 이상 필요 없는 나이에 그는 다시 학생증을 목에 걸었다.
"백 살 될 때까지, 죽을 때까지 공부할래요. 공부는 끝이 아니요, 계속이요."(조선일보, 24.11.22)
“백 살 될 때까지, 죽을 때까지 공부할래요. 공부는 끝이 아니요, 계속이요”
그가 공부를 택한 이유는 더 올라가기 위해서는 아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올라가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기 위해 공부하는 셈이다. 살 될 때까지, 죽을 때까지 공부할래요. 공부는 끝이 아니요, 계속이요”
배움이 삶의 태도가 된 사람도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던 장영희 교수는 소아마비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았다. 그럼에도 그는 공부를 놓지 않았고, 학생을 가르쳤고, 글을 썼다.
말기 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그의 하루는 달라지지 않았다. 병상에서도 책을 읽고, 문장을 고치고, 학생을 떠올렸다. 그에게 배움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를 자기답게 살아내는 길이었다.
요즘 나는 오디오북으로 소설을 자주 듣는다. 유튜브에서 15분 만에 요약해 들을 수 있는 고전들도 있다.
젊은 시절, 대학에서 미국소설 강의를 들으며 교재로 읽었던 호손의 <주홍글씨>를 얼마 전 다시 들었다. 유튜브 <김세라작가의 15분에 책 한 권>에서 32분으로 축약한 것으로.
이번에는 전혀 다른 감동이 왔다. 죄를 감춘 사람과, 죄를 드러낸 사람이 만들어내는 대비가 마치 신의 섭리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듯해 전율이 일었다. 그제야 알았다. 젊을 때의 배움은 시험을 위한 것이었고, 지금의 배움은 삶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나이 들어 배우니, 배움의 맛이 다르다. 밥맛이 변하듯, 배움의 맛도 변하는 모양이다.
배움에는 때가 없다. 다만, 배움을 붙들 용기가 있을 뿐이다.
배움은 미래를 여는 열쇠가 아니라, 삶을 끝까지 존엄하게 만드는 태도다.
딱히 배워서 무엇을 하겠다는 목적이 없어도 좋다. 배우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공자의 말 그대로다.
“배우고 때로 익히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겪고 나서 깨달은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