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가니 보이네 ⑳
고등학교 동창생 문상 와서, 동창 6명이 둘러앉아 조용히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는 고인의 모습이 왜 그리 젊어 보일까. 72세, 아직 갈 나이가 아닌데 저렇게 가다니......
우리에게도 죽음이 코앞에 닥친 듯하다. 한 친구는 병원 다니는 이야기를 꺼냈고, 다른 친구는 아픈 데를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말까지 나오자, 어느 친구가 말했다.
"이제, 그냥 사는 거야!"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럼, 그냥 사는 거지 뭐."
무심한 세월이 그리 가는데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나이 들어 몸이 시들어 감을 어떻게 피할 수가 있을까. 이만큼 살아봤으니 감사하며, 주어 지는 대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할 처지다.
"그냥 살 수 있어야지, 근데."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이 늦은 나이에 새로운 욕망이 꿈틀거리니, 내 마음을 어찌할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 브런치북에 연재하며 드러내놓고 글쓰기를 하고 있다. 늦게 배운 도둑질 밤새는 줄 모른다는 말 그대로다. 뒤늦게 시작한 끄적질이 멈추어지질 않는다. 아직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는데, 여기서 멈춰야 한다면 아쉬워서 어쩌나. 조바심이 밤잠을 설치게 하고, 한 편이라도 더 쓰게 한다.
돌이켜보니 나의 글쓰기는 때로는 당돌했겠지만 무척이나 수줍었다.
벽촌 국민학교 6학년 때, 무슨 바람이 내 마음에서 일었는지 모르겠다. 없는 살림 뻔히 알면서 '소년동아일보'를 구독하겠다며 어머니께 부탁드렸다. 무엇하나 해달라고 조르지 않던 아들의 모처럼 부탁이라서였을까. 힘겨운 살림에도 허락해 주셨다. 그때가 소년동아일보 창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해 겨울, 독자란에 몰래 투고했다. 우체국에 가면서 가슴이 뛰었다.
이주일쯤 뒤에 신문에 실린 활자화된 내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선물로 받은 <마해송아동문학선집>을 보고 또 봤다. 그 책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 작은 기쁨이 훗날, 학보나 일간지에 기고하는데 두고두고 용기가 돼주었다. 때로는 그렇게 당돌한 짓을 했지만 난 늘 글 쓰기를 수줍어했다. 글 쓰고 싶어 했지만 쓸 깜냥이 못된다고 여겼다.
방송사에서 라디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다. PD 가 직접 쓰게 돼 있다 보니, 쓸 수밖에 없었다. 다른 프로그램 연출 할 때는 쓰고 싶었지만, 작가가 있으니 나설 수 없었다. MBC사보, MBC 가이드에서 원고 청탁이 오면 마지못하듯 썼다. 정년 후에는 가톨릭 활동을 하면서, 활동을 소개하기 위한 글을 써야만 했다. 가톨릭신문, 가톨릭잡지, 가톨릭단체 회보에 청탁을 받고 썼다. 강제된 경우에만 글을 쓴 셈이다. 아주 드물게는 당돌한 투고도 했지만.
지난 3월 낙상사고로 40여 일 입원했다. 6인용 병실에서, 새벽 3시면 깨어나 뒤척거리다 스마트폰을 열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스마트폰에 쓰다 보니, 병에 대한 암울한 두려움이나 병실생활의 힘겨움도 잊게 되었다. 게다가 외상성 뇌출혈로 뇌의 인지기능이 손상을 입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인지기능 훈련을 위해서라도 글쓰기를 권했다. 매일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병상에서 글 쓰던 버릇이 이제 내 일상이 되었다. 두 달 전부터는 에세이를 넘어 다른 장르의 글도 쓰고 있다.
돌이켜보면 나의 글쓰기는 나의 일을 위한 수단이었다. 방송을 위해, 종교활동을 위해, 그리고 나의 병치료를 위해 썼다. 글만을 위한 글쓰기는 나서지 못했다. 글쓰기를 수줍어하며 작가로 재주 없음을 탓하며 애써 고개를 돌렸다. 어느 선배의 말대로 '자신감'이 부족했다.
몇 달 전부터야 비로소 글이 목적이 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많이 늦어서 아쉬웠지만 이리 쓸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글을 쓰고는 아내에게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눈다. SNS에 올리고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쓰면 쓸수록,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이 떠오른다. 한편이라도 더 쓰고 싶은 지금이다. 그런데 남은 세월을 세어보게 되었으니 어쩌나. 인공지능시대에는 작가도 사라진다는데.
화가 친구가 그리다 만 그림이 끌려, 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다. 40 년도 더 된 이야기다. 더 그려야 한다기에 , 그대로도 좋다고 그 그림을 달라고 고집했다. 언젠가 그림 한 점 주기로 약속 한 사이였기에, 마지못해 주었다. 푸른빛이 햇살처럼 감도는 산사 山寺의 그 그림을 걸어두고 한동안 푹 빠졌었다.
그리다 만 그림처럼, 쓰다만 글도 글이다. 끝나면 끝이지, 끝이 따로 있을까. 미완성교향곡도 있지 않은가.
이제는 언제라도 쓰다 말게 됨도 받아들여야 할 나이다. 그래도 살아 있는 만큼 쓴다면, 그나마 감사하지 않은가.
상갓집에서 만난 친구 말대로 이렇게 말해 본다.
"그냥 쓰는 거지, 뭐."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세월가니 보이는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