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가니 보이네 ⑲
지난해부터 대중문화의 한 시대를 만들었던 분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방송과 영화, 연극으로 우리 삶의 결을 만들어주었던 사람들이다. 이순재, 변웅전, 전유성, 김지미, 송도순, 윤석화….
그들은 작품으로 오래 남겠지만, 뒷모습은 저마다 달랐다. 이번에 떠난 안성기는 유독 한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착함’.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은 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그가 어린 아들에게 편지로 남겼던 말이다.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영결미사에서 아들이 이 말을 읽어 내려갔다. 아들이 덧붙인 말처럼, 그 말은 우리 모두에게 남긴 말처럼 들렸다.
아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길 바랐던 그는, 스스로 그 말의 증거처럼 살았다. 배우 정우성의 조사(弔辭) 표현처럼, 그는 ‘온화한 얼굴로 인간의 품위를 지켜낸 사람’이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고인을 가까이에서 보았던 허영엽 마티아 신부는 이렇게 회상했다.
“항상 인성 人性이 착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기억에 남아요. 특히 영화현장에 있는 스태프와 조연, 무명배우들에 대한 따뜻한 인사와 위로를 주려고 했는데 늘 부족했다고 겸손해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전해진 일화들도 그 말과 어긋나지 않는다. 아파트 경비원과 미화원들을 호텔 뷔페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는 이야기처럼, 그의 착함은 소문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나에게 남은 기억도 비슷하다. 30여 년 전, 내가 연출하던 MBC 라디오 프로그램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그를 초대했었다. 그는 말없이 대기했다가 출연하고, 조용히 돌아갔다. 그의 기억이 흐릿한 이유가 오히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요즘 ‘착하다’는 말에 때가 많이 묻었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사람,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 밀려나는 사람을 두고도 ‘착하다’고 말한다. 빼앗기고 손해 보는 행동을 '착해서'라고 추어준다. 그러다 보니, 이기적인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짓누르는 수단으로 '착함'을 악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때로 바보의 다른 이름이 된다.
하지만 김수환 추기경은 스스로를 “바보”라 불렀고, 그 정신은 ‘바보장학회’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세상에서
손해 보는 쪽을 향해 몸을 기울이는 선택, 그것이 신앙이 말하는 착함이다.
“착하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하며, 선(善)을 향해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허영엽 신부의 이 말은 ‘착함’을 다시 제자리에 놓는다.
'착하다'와 '착한 사람'을 눈 아래로 대하는 사람들도 착함, 순수함에 대한 이끌림은 분명 있다.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에 대중이 흠뻑 빠져들듯, 순수한 착함에 대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고인이 된 방송사 선배 PD 한 분이 떠오른다. 위압적이고 욕심도 많던 분인데, 어느 날 사석에서 껄껄 웃으며 내게 말했다.
“햐아, 이 노래 가사 중에 ‘착한 당신’ 이 말이 너무 좋아.”
그가 말한 노래는 MBC라디오 드라마 주제가, 양인자가 작사한, 조용필의 노래 '바람이 전하는 말'이다.
착한 당신 외로워도 바람소리라 생각하지 마
그 노래가 오래 사랑받은 이유 중 하나는 애절하게 “착한 당신”이라고 불러주는 그 한마디 때문 아니었을까. 세상은 늘 이긴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 노래는 눈물로 버텨온 사람에게 그래도 당신은 착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안성기가 우리 기억 속에 남은 이유도 어쩌면 그와 다르지 않다. 그는 성공한 배우였지만, 끝까지 착함을 내려놓지 않은 사람으로 남았다.
착함은 늘 세상의 아래쪽에 깔려 있다. 누군가 그것을 삶으로 증명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잠시 맑아진다. 그것 만으로도, 사도 요한 안성기 형제는 이 세상에 귀한 흔적을 남겼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루카 8,15)
그의 천상 안식을 빈다.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세월가니 보이는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