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고, 흔들고, 박찬순 북콘서트를 다녀와서

세월가니 보이네 ⑱

by 김승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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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난 해 연말 12월 30일, 해가 바뀌는 그즈음에 내 생각을 흔들어 놓은 북콘서트에 다녀왔다.


장소인 이호철 문학관 북콘서트홀을 찾는 길은 내 인지능력 테스트 같았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물어 찾았다. 홀에 들어서니, 누군가가 말했다.

"나이 든 사람들 찾아오기 정말 힘들겠어."

길만 헷갈린 게 아니라, 마음마저 왔다 갔다 흔들렸다.


기차모양의 육중한 화차 조형물이 북콘서트홀 옆면을 꽉 채웠다.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작가의 창작열을 상징하는 듯하고, 어떤 목적을 향한 끝없는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듯도했다.

멈추지 않고 앞으로 달겨나가는 기차를, 나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기분도 들었다.



이날의 북콘서트 작가는 나이를 앞세워 주목받는 걸 꺼리고, 오직 작품으로 민 평가받고 싶어 한다고 들었다. 일부러 정확한 나이를 물아보지 않았다. 작가가 네 살 때 한국전쟁을 겪었다니 짐작만 할 뿐이다.


먼저, 기획자가 기타를 들고 마이크 앞에 섰다.

"음악프로그램을 30년 만들다 보니, 노래 부르고 싶어 졌어요. 아내가 버스킹 장비를 사주어서, 길거리 공연을 다닙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무명가수 조정선입니다."

오늘 저자의 방송사 후배인 MBC라디오 PD출신 조정선이다. 'Perhaps Love'와 '안개'를 불렀다.


어이서 등단한 사회자는 언뜻 보면 사십 줄로 보인다. MBC TV의 스타 PD였던 주철환이다. 방송사를 떠나, 대학교 교수와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지냈고, 여전히 활발한 저술활동을 한다.


동안인 그는 소년 같은 마음으로, 세월을 잊고 사는 작가를 '소녀'라고 부르며 무대에 세웠다. 작가와 양팔을 옆으로 잡아, 하트를 만들었다. '소년이 소녀를 만나다'라며.


작가.jpg 왼쪽부터 작가 박찬순, 사회자 주철환

박찬순 작가는 자신이 걸어온 길과 작품 배경을 PPT를 써서 소개했다.

Chat GPT를 활용해 아기 옷에 난초를 수놓은 이미지를 만들어 화면에 띄었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힘들었어요."

수줍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그는 늘 새로움과 함께 사나 보다.


MBC라디오 PD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였다. 결혼하면 사직해야 한다는 각서를 쓰고 입사했기에 결혼 후 그만두어야 했다. 퇴직 후 번역 일을 했고, 최초 번역서 '골다메이어'가 좋은 반응을 받았다. 방송사 외화 번역 일로 이어져, 영화, 시리즈물, 애니메이션 수백 편을 번역했다.


5전 6기의 도전 끝에 나이 60에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동인 문학상 최종 후보에 두 차례나 올랐다.

그리고 십 년의 준비를 거쳐서 장편소설 <난 잎에 베이다>를 출간하게 되었다. 팔십을 앞두고 서다.

자식이 대학 4학년이 되어서, '대학등록금을 다 내고서야 글 쓰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내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이야기는 안동의 '단원로'라는 지명에서 싹이 텄다. 단원 김홍도의 난초 그림 자취를 따라가다, 난초 그림을 옷에 수놓아 해외 입양을 보낸 사연과 입양아가 원예학자가 되어 돌아와 난초를 연구하게 된 사연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외래종과의 교배로 난 향을 강하게 하려는 개량종파와 순수한 토종파 사이의 갈등이 살인 사건을 빚는다. 이야기는 조선 시대와 현재, 한국과 유럽의 길고 먼 시공을 오가며 정교하게 짜였다.


이 행사의 사회자는 일흔둘이라고 본인의 나이를 소개했고, 기획자이며 축가를 부른 이는 예순다섯이다. 60대가 기획하고, 70대가 사회 본 80대 작가의 북콘서트다. 나이로만 치면 쉽게 주목받을 행사였지만, 그들은 그런 걸 전혀 내세우지 않았다.


오늘의 작가, 기획자, 사회자는 'MBC사우 드림팀'이다. 손뼉 치며 즐겁게 빠져들었다가 내 나이를 견주어 보게 되었다. 60대 그 나이에 나는 저렇게 살았나. 70대 이 나이에 저처럼 살고 있나. 80대까지 산다면 저리 살 수 있을까. 부끄럽고, 샘나고, 아득하다.


축하하러 갔다가,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남의 삶의 박자를 세다 보니 내 삶의 박자가 떠올랐다. 왜 이토록 남의 걸음걸이에 마음이 흔들렸을까.

박찬순 드림팀'.jpg 왼쪽부터 사회 주철환, 성우 윤성혜, 작가 박찬순, 기획 조정선

며칠 뒤, 친구처럼 지내는 동갑내기 시인과 전화힐 기회가 있었다. 내가 브런치북에 올리는 글을 보고, 그도 브런치 연재를 시작했단다. 브런치북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쩔쩔매고 있다고도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내 모습을 되돌아봤다. 내가 쓴 글을 드러내려고 브런치북에 올리고, 페이스북에 올리다가 남의 마음을 흔들어 놨구나.


나는 누군가에게 흔들렸고, 또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며 살고 있다. 사람은 그렇게 흔들리며 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흔들리며 길을 확인하고, 흔들리며 속도를 가늠한다. 그래도 결국에는, 남의 박자가 아니라 내 박자로 걸어가게 된다.


내가 가는 이 길을, 조금은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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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세월 가니 보이네>

다음 주에는 착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착한 사람, 안성기'도 함께 해주세요.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세월가니 보이는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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