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가니 보이네 ⑰
어느 빌딩 앞문을 당당하게 밀었다. 문도 당당하게 밀리지 않았다.
그제사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당기시오'
'당기시오'라고 써 붙인 문을 진지하게 밀고 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얼른 주변을 살짝 둘러봤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다른 빌딩에서다.
'당기시오'라고 써붙인 문을 일부러 밀어봤다. 열렸다. 당겨봤다. 역시 열렸다. 당겨도 열리고 밀어도 열렸다.
안내문은 까다로웠지만 문은 친절했다.
그 뒤로, 문 앞에 서면 일부러 살펴봤다.
'당기시오' 안내문에 밀어도 열리는지, '미시오' 안내문에 당겨도 되는지.
결과는 상상대로였다. 안내문은 안내문일 뿐, 자유롭게 열리는 문들이 꽤 있었다.
"문 안내문마저 사람을 속이다니. 이 사회의 만연한 거짓말이 문에까지 번졌구나!"
이렇게 개탄하다가, 문 여는 것까지 규칙을 만들어, 안내문을 달 필요까지 있을지 따져 보았다.
알아보니 문의 열리는 방향은 건축법, 소방법, 재난피난 경로의 원칙이 숨어있다.
빌딩 현관문은 재난이 일어나면, 대피하기 쉽게 안에서 밖으로 열려야 된다.
복도에 면한 문은 통행인을 다치지 않게 밖에서 안으로 열리게 되어 있다.
그런 소소한 것들을 지나칠 테니 일일이 안내해 주는 거다.
문 하나의 안내가 틀리면, 사람들은 안내 자체를 믿지 않게 되고, 작은 무질서에 길들여지면, 사람들은 질서에 둔감해지게 될 거다.
믿음이 흔들리면 질서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정확한 안내가 작은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가 믿음을 주지 않을까.
지나쳐 보는 자잘한 것들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본다.
지나쳐 보게 되는 분들 수고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 본다.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세월가니 보이는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