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보이네 ⑨
“남편이 노래할 때가 제일 멋져 보이죠. 노래할 때 표정이 가장 행복해 보여요."
<마음으로 울리는 하모니> 공연장에서 만난 아내 임미영의 말이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시각장애인이 노래를 한다는 건 기분 좋은 스트레스예요.”
무대 뒤에서 만난 시각장애인 테너 윤용성은 그렇게 말했다. 악보를 볼 수 없으니 귀로 듣고 또 듣는 반복 연습을 해야 한다. 분명 스트레스다. 그런데 무대에 서면, 현실에서 오는 우울과 장애로 오는 피로가 노래로 날아간다고 했다.
지난 2024년 4월 19일 장애인의 날, 한국저시력인협회가 마련한 음악회 <마음으로 울리는 하모니>에서 그는 ‘넬라 판타지아’와 가요 ‘그대 내 친구여’를 차례로 불렀다.
“실명하고 나서 처음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었어요. 그런데 노래를 하니까 마음이 안정되더라고요. 음악이 없었으면, 아직도 방 안에서 우울해하고 있었을 겁니다.”
윤용성은 원래 음악인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일을 거쳐 20년 넘게 에어컨 사업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2020년 8월 8일, 1급 시각장애인 등록을 했다.
“어제까지 내려가던 계단을, 오늘은 못 내려가는 거예요. 그 현실이 너무 한탄스러웠죠. 그런 힘들었던 걸 음악에 집중하면서, 중도실명에 대한 스트레스가 해소되었습니다. 음악은 치유의 힘이 있어요”
어느 날 왼쪽 눈에 파리만 한 것이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었고, 병원에 갔을 땐 왼쪽 눈은 이미 실명해 있었다. 오른쪽 눈을 수술받았는데 색은 사라지고, 형체만 어슴푸레 보였다. 재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멘토도 없고, 매뉴얼도 없어요. 장애인이 되는 과정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눈이 안 보인다고 자동으로 '등록 장애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누가 먼저 알려주지 않았다.
“저수조 물통에 갇힌 느낌이었어요. 누군가 꺼내줘야 하는데, 아무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더라고요.”
그를 다시 밖으로 끌어낸 건 음악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밴드부 활동, 군악대 트럼펫 연주 경험이 떠올랐다. 2022년 ‘흰 지팡이의 날 노래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으며, 그는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2023년에는 중랑구 장미축제에서, 용마콩쿠르축제, 망우본동 가요축제에서 잇달아 최고상을 거머쥐었다. 2024년 장애인콩쿠르에서도 우수상을 받았다.
좀 더 체계적으로 음악을 배우고 싶어졌다. 실명하고서 안마를 배우던 중 만난 음악인의 권유로 한빛맹학교 음악전공과에 입학했다. 주변에서는 말렸다.
“거기 가면 당신 가르칠 선생, 없을 거야.”
막상 가보니 달랐다.
“이렇게 좋은 곳이 없어요. 우수한 선생님이 반복해서라도 어떻게든 가르쳐 주세요.”
음악개론, 서양음악사, 화성학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며 그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 군악대 시절, 시립합창단 지휘자가 타고난 목소리를 지녔으니 연주보다는 성악을 해보라는 권유도 받았었다. 하지만 그 당시 경제사정으로 배우는 게 만만치 않아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한빛맹학교는 2년제 학점운용제로 운영한다. 학비는 과목 수에 상관없이 학기당 40만 원. 더구나 차상위 계층과 기초수급자는 학비 면제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열 살, 스무 살 어린 친구들과 함께 앉아 음악을 배웠다.
“선천적 전맹인 친구들 중엔 한 번 들으면 다 외우는 학생도 있고요. 피아노 건반 5개나 10개를 동시에 쳐도, 그 음들을 다 맞추는 학생도 있어요."
절대음감을 지닌 그런 학생들은 빗방울 소리에서 다섯 가지 소리, 열 가지 소리를 구분해 낸다고 한다. 놀라운 청각을 지녔지만, 경험의 한계로 부분적으로만 뛰어난 점이 아쉽단다. 그들과 비교해 자신은 지난 50년 동안 보고 만지고 느끼며 세상을 알고 지낸 것을 감사하게 되었다.
윤용성은 지난 1월 29일, 한빛맹학교를 졸업했다. 올해, 일반 대학 음대 3학년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
“노래는 장애인, 비장애인 가리지 않는 만국통용어잖아요. 가르칠 수 있다면, 가르치고 싶어요.”
지금도 시각장애인 친구들과 노래를 배우고 싶은 이들을 위해 무료 성악 레슨을 하고 있다. 언젠가 합창단을 지휘하거나 교회찬양팀을 맡는 게 꿈이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YMCA 종로인명 자립재활센터’에 출근한다. 동요 상담을 하고 동료 장애인들을 돕는다. 아내도 함께 나와 간식과 이동 봉사를 한다. 아내의 말이다.
“처음엔 숨이 막혔어요. 지금은 안쓰럽게 보지 않아요. 그냥 눈이 안 보여서 불편할 뿐이지 비장애인보다 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능력자들이 많으세요. 다들 정말 대단한 분들이에요. "
테너 윤용성은 장애인 합창단 ‘루체온 콰이어’의 부단장이다. ‘루체온’은 ‘빛을 켜다’라는 뜻이다.
“우울증이 주기적으로 왔어요. 몇 달씩 이유 없이 화나고 짜증이 났죠.”
남과 같이 합창하거나 노래하면 다 잊어버린다고 했다. 분노조절, 우울증 완화에 음악이 힘이 되고 남과의 관계도 개선된다고 한다. 만나고 보듬어주는 사회생활이 필요한 장애인들에게 합창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틀릴 때는 울기도 해요. 그래도 무대에서 박수받으면, 불평 없이 다시 힘을 모아요.”
노래를 함께 부르다 보면 서로를 배려하게 되고, 결속력은 끈끈해진다. 윤용성은 말한다.
“저는 장애를 극복한 게 아니라, 적응하며 살아요. 노래는 제게 기분 좋은 스트레스예요.”
그는 오늘도 기분 좋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노래 부른다.
윤용성이 출연한 2024년 <마음으로 울리는 하모니> 동영상
https://youtu.be/9OkyCnfbx_s?si=T_8m2tNfkt0MVyEM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겪고 나서 깨달은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