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그리다 - 전맹화가 박환

보이지 않아도 보이네 ⑩

by 김승월

춘천의 한 아파트. 화실로 꾸민 거실의 유리창 너머로 앞 산이 훤히 내다 보인다. 하지만 그 산도, 하늘도, 캔버스 앞에 앉은 화가는 전혀 보지 못한다. 전맹의 화가 박환(69)이다.

"캔버스 앞에 앉으면 기도부터 드려요. 그런 다음, 먼저 그렸던 물체의 위치, 음양, 돌출, 입체감을 기억해 냅니다.”


작업대 위에는 물감을 짜 놓은 플라스틱통들이 놓여있고, 그 옆에는 나무껍질들, 청바지 천조각들이 쌓여있다. 탁자 위에는 실꾸러미와 가위가 놓여있다. 캔버스에는 여러 개의 핀이 꽂혀 있고 굵기가 다른 무명실이 이리저리 걸려 있다. 그가 어둠 속에서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 걸까.


여동생 박수희가 오빠는 어려서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였다고 했다.

“오빠는 그림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자고 나면 그림 하나 뚝딱 그려 놔서 모두 놀랐죠.”


그는 미술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책 보고 배우거나 화랑을 다니며 남의 그림을 보고 익히지도 않았고, 혼자 그리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4차례 입선을 했고, 다른 공모전에서도 두 차례나 상을 받았다.


그가 그린 그림은 유달리 집이나 마을이 많다.

“사람에게 소중한 게 집이잖아요,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생활, 사는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죠.”

그는 집이 마치 생명체처럼 모든 걸 보고 기억한다고 상상했다. 집의 표정에 고향집 어린 시절도 담아냈다.

“제 그림이 과거에 대한 기억을 세밀하게 표현해 냈다는 말도 들었어요.”


그는 동양화롤 25년 동안 그리다가, 2006년부터 서양화로 발길을 돌렸다. 소박한 질감과 색다른 시각으로 집과 집안이나 번지는 불빛을 정감 있게 그려냈다.


2013년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 KIAF에 초대되어 호평도 받았다. 세계로 발돋움하려는 희망이 차올랐다. 전시회를 마치고 3주 뒤, 그가 서울에서 춘천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춘천 가까이 다다랐을 때였다. 그의 차가 내리막에서 트럭을 들이받고 뭉개졌다. 구겨진 차를 절단해서야 그를 꺼낼 수가 있었다.


한 달 넘게 의식을 잃은 채 입원했었다.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시신경은 훼손되었다. 그림 그리는 그가 앞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었다.


“눈앞이 완전히 캄캄했죠.”

힘드니까, 삶을 끊으려고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그러다 자신에게 물었다.

“왜 그림을 못하지?”


연필로 스케치를 시도했다. 그린 다음에 다시 캔버스를 대하면 그려 놓은 그림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가 뜨개질을 잘하셨어요. 그게 떠올라 실로 스케치를 대신했지요. “

캔버스에 형체 윤곽선을 따라 핀을 꼽고, 실을 핀에 걸어 선을 그려냈다. 손끝으로 실을 더듬어서 형체의 윤곽을 기억해 냈다. 색은 손바닥 촉감으로 구분해 칠했다. 그의 손끝이 예민해져 갔다.

“지금은 손끝으로 작은 바람도 느낄 수 있어요. 엄청나게 예민해졌죠.”


촉감으로 그려낸 모습을 계속 생각하면 화면이 보이게 된다고 한다. 그는 비구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얼 표현했는지 가족도 알지 못했고 그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좌절감이 온몸을 찌르는 것처럼 아팠어요. 낭떠러지에서 쫙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절망감으로 몸을 다치게 했다. 병원에 실려가 수술까지 받았다.


다시 구상으로 돌렸다. 가족이 보기 좋다고 했지만,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 점점 제대로 자신의 구상이 표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도와주는 여동생의 말이다.

“오빠는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에요, 몸이 힘들고 좌절감이 심해도 이 악물고 다시 노력해요.”

그는 25미터 수영장에서 90회나 수영할 만큼 연습도 했다. 30대에는 ‘철인삼종경기’를 3번 참가했다.

“저는 뭐든지 끝까지 하는 성격이 있어요. 좌절하고 싶을 때도, '끝이 아니다, 다시 한번 해보자' 해요.”

손 2ss.jpg 박환화백의 손_ 박한 화백 제공

박화백은 그림에 현장감을 느끼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실물을 캔버스에 붙여 보았다. 나무껍질을 잘라 붙여 나무를 표현했다. 청바지 천을 오려 붙여 그 질감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접착제를 보지 않고서 사용하는 게 엄청 힘들었어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손 끝으로 만족스럽지 않음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감촉이 주는 이미지가 있어요. ‘이건 아닌데’ 하는 게 손으로 만져져요. 그러면 고치거나, 그만두죠.”

'불가능한 게 뻔히 보이는데, 해서 뭣하나.',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고만두겠다'라고 한 적이 허다했다.


그래도 2017년 '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 박환 특별전'을 열었고, 2019년에는 3차례 개인전도 가졌다. 내년에도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그의 그림에는 자주 길이 나온다. 울퉁불퉁한 벼랑길, 건너기 힘든 길, 낭떠러지 앞의 길. 그리고 그 길 어딘가에는 늘 불빛이 있다.

“사람은 불빛을 보고 걷잖아요. 제 그림에서도 그래요. 불빛은 희망이죠.”

잡구람'.jpg 기다림 2_박환 화백

실물을 붙이는 입체 그림은 그에게 몇 배 더 힘들지만, 그는 일부러 더 어려운 길을 택한다. ‘이 정도는 시각장애인도 한다’는 말이 듣기 싫은 것이 이유 중 하나다.


그는 많은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그림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하나, 희망이다.

“포기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인간의 능력은 작게 보면 하잘 것 없어 보이지만, 확대해 보면 무한해요.”


캔버스를 볼 수 없게 된 뒤, 어둠 속에서 그가 그리고 있는 것은 그저 풍경이 아니다. 누군가 다시 걸어갈 수 있게 하는 작은 불빛 하나다.

경의로운 삶2ss.jpg 경이로운 삶 2_박환화백 그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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