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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월 Mar 22. 2024

침묵으로 말한다

침묵의 의미와 표현

침묵이 흘렀다. 7년 전, 부활절 성목요일, 에수님의 고난 주간, 미사 중이었다. 영성체를 마치고 기도를 올리던 상암동 성당 전대규 신부님 기도소리가 끊어진 것이다. 무슨 일일까? 제대를 바라보았다. 신부님이 제대에서 뒤로 물러나 앉아  있었다. 신부님 눈가에 눈물이 그대로 맺혀 있었다. “......, 예수님께서 ‘이 아픈 나를 사랑하느냐’......”까지 기도하고는 감정이 복 받혀 기도를 잇지 못한 것이다.  신부님의 울음 밴 마지막 기도소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위의 수난 장면과 겹쳐졌다. 침묵은 그 장면을 선명히 그려주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다. 책이 귀하던 시절, 어렵사리 빌려본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가슴을 아리게 한다.  순수한 사랑만을 갈망하던 여인 알리사가 세상 떠난 뒤 10년 후, 연인이던 제롬이 그녀의 유품이 보관된 방을 찾았다. 안내해 준 사촌 줄리엣이 어둠 속에서 스러지듯 주저앉는다. 마지막 구절이다.  “그녀가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 한 걸음 내딛더니 맥이 빠진 듯 곁에 있는 의자에 다시 털썩 주저앉는 것이었다. 그녀는 두 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하녀가 등불을 들고 들어왔다.” 큰 슬픔이 소리를 삼켜버렸다. 소리 내지도 못하는 침묵의 통곡이었다. 읽고 또 읽으며 연신 눈물 훔쳤던 기억이 난다.

앙드레 지드

  “슬픔이 크다고, 울음소리를 크게 내는 건 아니지요. 너무 슬플 때는 울음소리를 내지 않기도 해요.” 울음을 어떻게 연기하냐고 물었더니 성우 김은영이 그리 답했다. 소리 내지도 못하는 슬픔이 더 클 수도 있다. 애통해하며 큰 소리로 울부짖는 사람도 있지만, 숨 넘어가듯 자지러지는 사람도 있다. 


  라디오에서는 '묵음'(默音)이란 표현 방법이 있다. 침묵의 소리라는 뜻이다.  말과 말의 사이라는 의미로 ‘사이’라고도 부른다. 몇 초 동안 의도적으로 말은 물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초창기 라디오에서 묵음은 방송사고로 간주하였다. 말과 말 사이가 길면 무조건 줄이려 했다. 라디오 드라마에서 세밀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묵음의 기능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후로 묵음은 라디오의 중요한 표현 요소가 되었다. 이제는 라디오 표현 요소 4 가지 꼽으면, 말소리, 음악, 효과음, 그리고, 묵음이다.


  묵음의 첫 번째 기능은 강조다. 묵음은 묵음 다음의 이야기나 묵음 앞의 이야기를 강조해 준다. 신부님의 마치지 못한 기도 뒤 침묵이 여기에 해당한다. 묵음은 장소 변화나 시간 흐름을 상징하기도 한다. 좁은 문의 마지막 장면을 라디오로 표현했다면, 묵음을 사이사이 넣어 시간의 흐름을 나타냈을 것이다. 묵음은 라디오 드라마에서는 더 많은 의미를 갖는다. 동작을 묘사하거나 심리를 그려낸다. 두 사람 대화 사이의 간격은 두 사람 감정의 교감과 진행 상황을 표현한다. 사이 없는 대화는 긴장감 속도감, 사이 있는 대화는 평온함을 들려주기도 한다.  

침묵의 소리 Chat GPT Image

  커뮤니케이션에서 침묵은 어떤 의미일까. ‘침묵의 나선이론’ Spiral of Silence Theory 이 있다. 독일 노이만 Elisabeth Noelle Neumann이 주창한 커뮤니케이션 효과 이론이다. 사람들은 여론이 자신과 생각이 같으면 말을 하지만, 여론과 다르면 침묵한다는 것이다. 여론은 압력이 되어, 소수자를 침묵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미국 대통령 지난 선거에서 트럼프를 드러내지 않고 지지했던 샤이 트럼프처럼 자신의 생각을 숨기게 된다. 소외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속성을 짚어낸 이론이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침묵은 힘센 세력에 동조하는 것이다. 비겁한 사람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침묵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 침묵을 강요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애써 무관심으로 위장하여 침묵의 가면 뒤로 숨기도 한다.  절망감에 침묵하며 자신 앞가림마저 포기도 한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들 한다. 머리띠 두르고 떼 지어 지르는 소리만 듣지 말고 멀찍이 물러서서 침묵하는 이들, 그들의 침묵도 헤아리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신앙생활에서도 '침묵'(沈默)은 의미 깊다. 불교에서는 '묵언수행'이란 수련 방법이 있고, 가톨릭에서도  '침묵 피정'이 있다. 어느 가톨릭 단체에서 하는 신입 회원 교육받았다. 입소하자마자 하루 침묵을 강요받았다. 실수로 말할까 봐 바짝 긴장했다. 말하지 말아야지 하며 수없이 돼 내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속으로 혼자 묻고 혼자 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과 대화 나누는 나를 보았다. 침묵 속에서 나를 만났다고나 할까. 

영화 '침묵' ( Silence)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영화로 보았다. 포르투갈의 젊은 신부 둘이 배교했다고 소문난 스승 신부 찾으려 일본에 밀입국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성직자를 배교하도록 집요하게 몰고 갔다. 예수님의 얼굴을 그린 성화(聖畫) 밟으라고 조롱하고, 성화를 밟지 않으면 살해했다. 바닷가에 세운 십자가에 매달려 물이 차올라 숨을 거두는 순교자들, 성화 밟기를 거부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교자들에게 하느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는다. 성화를 밟고, 일본 여인과 결혼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스승 신부에게도 하느님은 침묵한다.     

안성철 마조리노 신부

 성 바오로수도회 안성철(마조리노) 신부님 말이다. “예수의 마음 배우기 침묵 피정을 혼자서 40일 동안 했는데요. 입을 닫는 순간 귀가 열리고, 오감이 열리죠. 침묵 속에서 기도를 30일쯤 하다 보니까 저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내면을 깊이 있게 성찰하다 보니, 그 작은 소리마저 들린 거죠.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어요. 침묵은 하느님의 언어입니다.”

침묵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


침묵 Chat GP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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