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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월 Mar 20. 2024

알아야 들린다

남의 말 제대로 들으려면

나만 그랬을까. 노래방에서 민망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멋들어지게 노래 불러대지 못해서 그런 건만 아니다. 노래 부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억지로 끌어 내놓고는 딴짓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서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말 시켜놓고는 자기 이야기 늘어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들은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헤밍웨이 말이 지나치게 들리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는 진지하게 하고 싶어 하면서도, 남의 이야기는 내켜 들으려 하지 않는다. 네댓 명 모인 자리에서도 동시에 두세 명이 다른 주제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 같이 대화하는 게 아니라 각자 연설하는 듯하다. 

줄리안 트레져

말한다고 해도, 다 듣는 건 아니다. 영국의 소리전문가 줄리안 트레져 (Julian Treasurer)가 한 TED 강의에서 소개한 통계에 따르면, 대화에서  듣는 시간은 60 퍼센트인데, 전체 내용의 25퍼센트 정도만 듣는다고 한다. 들으면서도 절반 이상은 듣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다른 문제는 듣는다고 다 알아듣는 것도 아니라는 데 있다. 청각의 특성 때문에 듣고 있어도 못 듣는 경우가 있고, 소리의 특성 때문에 열심히 들어도 못 알아듣기도 한다.  


시끄러운 칵테일파티에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자. 파티장의 온갖 소리와 소음을 다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관심 갖고 듣는 소리만 듣는다. 방송에서는 이를 ‘칵테일파티 효과‘ Cocktail Party Effect라고 부른다. 사람은 자신 만의 필터로 자신이 인식하는 소리, 관심 있는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듣는 말소리도 제대로 알아듣기는 쉽지 않다. 말소리에는 문자로 표현하는 내용 그 이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예’라는 대답이 언제나 같은 의미만은 아니다. 글자로는 한 가지 지만, 소리로 표현할 때는 여러 가지 의미가 된다. 감사한 감정이 담긴  ‘예’와 볼멘소리 ‘예’는 다르다. 되묻듯이 답하는 ‘예’는 부정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어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상황을 모르거나 정확히 듣지 못하면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말소리를 의도적으로 표현하면 많은 것을 전할 수가 있다. 화난 사람과 즐거운 사람의 목소리가 다르듯,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기분과 성격을 드러낼 수 있다. 목소리만으로 모든 걸 표현하는 성우는 소리에 민감하다. 성우 배한성은 소리만으로 무대, 즉 공간, 계절, 심지어 의상까지도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과장이 아니다. 말소리는 공간의 크기에 따라 울림이 다르다. 큰 공간에서 하는 소리는 말하는 사람이 톤을 높이기도 하지만, 소리가 반사되는 거리가 길기 때문에 울림이 크다. 반면에, 좁은 공간은 톤을 낮추어서 말하기도 하지만, 소리가 반사되는 거리가 짧아서 울림이 적다. 그런 소리의 특성을 표현해 내면 목소리만으로 장소 묘사가 가능해진다. 

성우 배한성

말소리로 날씨를 표현하기도 한다. 추울 때는 떨거나 움 추려든 소리가 나고, 더운 날에는 늘어지고 쳐진 소리가 난다. 춥다고 말하면서 떨지 않으면 추운 날씨가 표현되지 않는다. 의상도 마찬가지다. 몸에 겨운 무거운 옷을 입고 말할 때와 하늘거리는 얇은 옷을 걸치고 말할 때는 다를 수밖에 없다. 옷 무게에 눌려 힘겹게 내는 소리와 가벼운 옷차림으로 날아갈 듯 가볍게 말하는 소리는 다르다. 그런 세심한 차이를 소리로 표현할 수가 있다. 물론 그러한 표현을 모두가 알아듣는 건 아니지만


"소리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라디오 PD를 한 30년 하면서 생긴 믿음이다. 하지만 청취자는 어떻게 받아 들을까 늘 고민했다. 섬세하게 표현하는 많은 의도를 얼마큼 알아들을까.  십오 년 전,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의 이야기를 효과음향 만으로 라디오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이 있다. 뛰어난 도공들은 도자기를 만들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깨버린다. 도자기를 깨 버리고 마음을 가다듬어 다시 흙반죽 하고, 물레질하여 도자기를 빚고 뜨거운 가마에 넣어 도자기를 구워 내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깨 버린다. 이런 이야기였는데, 소리로만 스토리를 알아듣기는 쉽지 않았다.   방송 직후, 한 도공이 자신의 심정이 잘 담긴 소리라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상대의 의도를 제대로 알면 까다로운 소리도 알아들을 수 있다.   


“말하기는 양(陽)이고, 듣기는 음(陰)이다.”앞서 소개한 영국 소리전문가 줄이안 트레져 말이다. 말하기와 듣기는 해와 달처럼, 남자와 여자처럼, ‘음양’(陰陽)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뜻 아닐까.. 제대로 들으려면 수어를 익혀  농아들과 소통하는 사람처럼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가 잘 들어주면 말하기도 잘된다. 방송에 출연한 사람들로부터 종종 들은 이야기다. “열심히 들어주고, 맞장구를 잘 쳐주면 저도 모르게 말이 잘 돼요. 진행자 솜씨에 따라 말하기가 달라져요.”유능한 방송 진행자는 출연자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관계의 단절과 불통을 걱정하는 이가 적지 않다. 주의, 성향, 계층, 집단 사이의의 갈등과 대립을 아파한다. 관계 회복과 소통을 하려면 무엇보다 사랑이 필요하다. 소통의 기술도 요구된다. 듣기는 소통의 중요한 기술이다. 말하기 교육을 하듯이 듣기 교육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상대방의 말소리를 바르게 해석할 수 있도록 배워야 하지 않을까. 말소리 그 이상을 듣는다면, 말없는 말, 침묵조차 알아듣는다면 그만큼 더 소통이 잘 될 것이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소리도 마찬가지다. 아는 만큼 들을 수 있다. 알아야 들린다.

소리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 Chat GP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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