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보이네 ⑫
2025년, 강원도 춘천에서 열렸던 점자의 날 행사. 무대 위에 올라온 어르신 열댓 명이 봉고를 신나게 두드렸다. 박자는 얼추 맞았고 음정은 흩어졌지만, 얼굴은 환했다. 흥이 오르자 춤까지 나왔다.
“차려입고 사람들 앞에 나서니, 살맛 나네요.”
봉고를 친 이들은 모두 인제시각장애인협회 회원들이다. 그 무대 아래에서 조용히 보고 있던 사람, 인제시각장애인협회 회장 정기현이다.
인제읍 서쪽 지역에 협회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회원은 100여 명으로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전맹과 시력이 많이 불편한 저시력인들. 인제군에 등록된 전체 시각장애인 250여 명 중 활동이 가능한 분들은 거의 다 가입해 있다. 총회를 열면 50명 넘게 모인다. '다른 데는 빠져도 여기는 꼭 온다'는 말도 한다. 정기현은 그 말을 전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여기 나오는 게 살아가는 이유라고 하시는 분도 계세요.”
그 말이 이 협회의 존재의 이유처럼 들린다.
그는 원래 KT 화천전화국 직원이었다. 지역에서 번듯한 이 직장에 넥타이 매고 출퇴근했다.
결혼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다. 1988년 6월,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의식을 잃고 입원했는데, 마취 사고까지 겹쳤다. 50일 동안 중환자실에 있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손 쓸 수 없다며 퇴원을 권했다. 살아났지만, 말은 어눌해졌고 시력은 크게 손상됐다. 그 당시 기준으로 시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그의 나이 서른 살 때였다.
얼마 뒤 회사를 그만두었고 3년을 집에서 누워 지냈다. 아내가 생계를 꾸렸다.
그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독학으로 컴퓨터를 배웠고 기술을 익혔다. 컴퓨터 유통업체를 열었고 조립 PC 도 팔며 인터넷 사업을 벌였다. 사업은 제법 자리 잡았다. 번 돈의 일부를 익명으로 기부했다.
“십만 원을 베풀면, 백만 원어치 기분이 좋았어요. 이름이 없는 손이라서 더 좋았죠.”
그때 처음 알았다. 주는 마음의 기쁨을.
사회 복지에 뜻을 두었다.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배우고 사회복지사 자격을 땄다. 인제 애향원 임마누엘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일했다. 장애가 심한 분들과 먹고 자며 생활했다.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장애인들이에요. 먹여주고, 변을 받아내며 돌봤습니다.”
그러던 중, 마음으로 의지하던 누나가 세상을 떠났다. 강 둑방에서 펑펑 울고 또 울었다. 달랠 길이 없던 그 감정을 시로 썼다. 그 시로 월간문학지 '한울문학'에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마흔여덟이던 해인 2007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시보다는 사람이 먼저다.
“저는 시인이라기보다 사회복지인입니다.”
마흔아홉에 인제시각장애인협회 회장이 됐다.
“관청에 가서 책상을 발로 차고 소리 지르고 해서 지원을 받아내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법을 확인하고, 규정을 따지고, 절차대로 했습니다.”
사회복지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싶었다. 쉰한 살에 한림대학원에 들어가 석사과정을 마쳤다. 지금도 새벽 두 시 전에는 잠들지 않는다.
“공부할수록 제가 조금씩 더 알아가는 게 좋아요.”
인제시각장애인협회의 대표 사업은 이동 서비스다. 장애인들을 봉고차와 카니발로 병원에 모신다. 혼자 사는 전맹 회원에게는 집까지 찾아가서 손을 잡고 모셔 나온다. 병원에 가서 접수해 주고, 약을 수령하며, 집까지 모시고 돌아가 약 보관 위치까지 설명해 준다. 김장김치도 나르고 고추장도 구해다 준다. 도움을 주지만, ‘도움 받는 사람’으로만 남게 하지 않는다.
회원들에게 바리스타 교육을 받게 했다. 회원들은 인제군 행사장에서 커피를 팔았고, 그 수익금을 인제군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도자기를 배워 꽃병과 머그컵을 만들어 이웃에 선물도 했다. 행사는 딘 한차례로 그쳤다.
“지역 상권 동종 업체에 피해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후원회를 조직했다.
“백만 원 내는 큰 업체보다, 저금통 들고 오는 분이 진짜입니다.”
삼천 원, 오천 원처럼 소액 후원으로 모은 후원금이 한 해 천만 원이 넘는다.
“장애인은 무능력자가 아닙니다. 돈 달라고 조르지 말고, 즐겁게 돕게 해야죠.”
그는 부탁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마음을 나누게 하자'는 게 그의 원칙이다. 그 말에는 낮은 자존심 대신, 단단한 자긍심이 담겨있다.
그에게 장애에 대한 시를 쓰냐고 물었다.
“똑같은 인간인데, 장애인이라고 동정받는 게 싫어요.”
장애인 코스프레하는 걸로 비칠까 봐 신경 쓰인다고 했다. 그는 힘주어 말한다.
“저는 조용한 사회복지인이 되고 싶습니다.”
지난 1월 16일, 회장 선거가 있었다. 회원 몇 사람이 말했다.
“회장님이 안 하면 나도 안 나와요.”
그는 다시 4년을 맡게 됐다. 정기현은 말한다.
“회원들이 장애인이 된 게 오히려 행복하도록 해주고 싶어요."
회원들에게 그 마음이 전해졌나 보다. 감자도 옥수수도 쪄다 주기도 하고, 집에 고추장, 김장김치도 갖다 주기도 한다.
사고가 없었다면,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
“사고 안 났으면, 저의 교만이 더 큰 화를 불렀을지도 몰라요.”
고등학교 친구들이 그에게 해준 말이 있다.
“네가 제일 잘 산다. 좋은 일하면서 웃고 사니까.”
그는 지금,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남겨진 어깨를, 말없이 돌아서는 등은 본다.
인제읍 서쪽 변두리, 그리 크지 않은 사무실 하나. 누군가에게는 그곳이 밖으로 나올 이유가 된다.
그들에게 하루를 버틸 힘이 되어주고, 때로는 살맛 나게 해 준다.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겪고 나서 깨달은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