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상담사가 된 발레리나 /김현영①

보이지 않아도 보이네 ⑬

by 김승월

“괜찮아요, 요즘에는 못 볼 꼴이 더 많잖아요.”


시각장애인 상담가 김현영의 말이다. 인터뷰 첫 질문으로 보이지 않아서 불편하겠다고 물었더니, 웃으며 그렇게 답했다. 눈이 좋았던 지난 사십 년 동안 봐야 할 건 어지간히 다 봤다고도 덧붙였다.


그가 쓴 책 <얘, 나는 낮에도 깜깜한데?”> 프롤로그 타이틀도 직설적이다.

“나는 눈에 뵈는 게 없는 무서운 여자입니다.”


강의할 때 그렇게 인사하면 청중들이 큰소리로 웃는 단다. 장애를 이야기해서 자칫 무겁게 가라앉기 쉬운 분위기를 그렇게 바꿔 놓는다. 내게도 그리 말문을 텄다.

“저를 만나면 장애인 같지 않다고 해요. 칙칙하지 않고 유쾌하게 이야기 나눈대요.”

특강 하는 김현영박사

김현영은 발레리나였다. 어린 시절 학예회 무대에서 시작한 발레는 그의 전부가 되었다. 공연하고, 대학에서 가르치고, 교수 임용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삼십 대 중반, 안과에서 진단받았다.

“망막색소변성증입니다. 실명하게 될 겁니다.”


그때는 아직 보여서, ‘실명’이라는 말을 실감하지 못했다. 막연히 먼 이야기처럼 느꼈다.

“처음에는 제 귀를 의심했어요.”


그 진단은 현실이 되었다. 십여 년이 흐른 사십 대 중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막상 보이지 않게 되자, 두려웠고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세상이 아니라 자신이 무너졌다. 발레를 할 수 없는 몸, 무대를 잃은 사람, 자신을 내세우던 이름들이 사라졌다.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이렇게 살아 뭐 해.”

결혼생활도, 직업도, 자존심도 함께 흔들렸다. 서울을 떠나 대전으로 내려갔다. 연고도 없는 도시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살았다.


더 이상 발레를 할 수 없게 된 그는 어둠 속에서 죽어가는 백조가 된 기분이 들었다. 클래식 발레 ‘빈사의 백조’가 떠올랐다고 했다. 가녀린 백조가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낸 레퍼토리다.

“암전 되며 끝나는 그 순간에 맞닥뜨렸어요.”


우울과 공황, 악몽에 시달렸다. 죽고 싶은 생각과, 그래도 살고 싶은 마음이 번갈아 오갔다. 치료법이라는 것은 다 찾아보았다. 기도도 해 보았고, 좋다는 것은 모두 해 보았다. 심지어 사이비 종교에까지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야 멈췄다.

“어차피 안 되는 것에 연연하지 말자.”


그 무렵, 아버지의 죽음을 맞았다. 죽음만 생각하던 자신을 돌아보았다. 굳이 죽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를 보내 드린 뒤에야 생각의 방향을 바꾸었다.

“이왕 사는 거, 하고 싶은 것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방에만 틀어박혀 지내던 그를 밖으로 끌어낸 사람도 있었다. 한밭장애인자립지원센터 소속 활동가였다. 현관에 들어서는데 철커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리 보조기에서 나는 금속음이었다. 지체장애를 가진 여성이었다.

“그 몸으로 저를 찾아오셨어요. 귀찮을 만큼 전화도 하시고요.”


장애인을 돕는 활동보조인 제도가 있으니 이용해 보라고 권했다. 삼겹살 구워 먹고 있는데 같이 와서 먹자고도 불러냈다. 대답을 하지 않았어도 ‘철커덕’ 소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2년쯤 지나서야, 활동보조인을 신청했고, 문을 열고 따라나섰다.

“미안해서라도 나가야겠더라고요.”


2010년에 재활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먼저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점자와 컴퓨터를 배웠고, 흰 지팡이 사용법도 익혔다. 보행훈련도 했다. 흰 지팡이를 처음 들었을 때, 주위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자신을 돌아봤다.

“교만했었겠죠, 겸손해지라는 거구나. 그렇게 받아들였어요.”


지금 그는 당당히 흰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점자 한 글자, 또 한 글자를 손끝으로 익혔다.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다. ‘이렇게 읽어서 어느 세월에 익힐 수 있을까.’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자책 한 페이지를 끝까지 읽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불이 필요 없는 여자가 되었구나! 어둠 속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네.”


낮에도 깜깜하다는 그는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았다.

불은 꺼졌지만, 삶은 꺼지지 않았다.

By Joseph Won on Unsplash

*브런치북 <보이지 않아도 보이네>

다음 주에도 김현영상담사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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