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주는 상담사
“장애인이라서 상담사 하기 좋은 점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상담사 김현영은 그렇게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를 밖에서 만나면 쑥스럽잖아요. 저는 내담자를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니까, 그게 편하대요.”
보지 못하는 일이 그에게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그는 상담할 때 오래 듣는다. 눈으로 살피지 않고, 표정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말에 집중한다. 말과 말 사이의 의미마저 집어낸다.
<김현영심리상담연구소>에는 비장애인도, 장애인도 찾아온다. 장애인은 상담료를 받지 않기도 한다. 그를 찾는 시각장애인들 대부분은 후천적 장애인이다. 어제까지 보였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면 얼마나 힘들어질까.
“많은 분들이 장애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말씀하세요. 막상 상담을 해보면, 장애 이전부터 이미 문제가 있었던 경우가 많아요.”
가족관계가 좋은 사람일수록, 성격이 긍정적일수록, 장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받는단다.
중도 실명한 뒤에 20년 가까이 집 안에만 있었다는 분이 찾아왔다. 5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세상에 나오는 것이 두려워 문을 닫아걸고 살아왔다고 했다. 꾸준히 상담을 이어갔고, 조금씩 바깥 이야기를 했다. 2년이 지나서야 말했다.
"밖에 나가보고 싶어요."
그는 맹학교에 들어갔다. 안마를 배워서, 지금은 안마사로 일하고 있다. 김현영은 말했다.
“제가 바꾼 게 아니에요. 그분이 선택한 거죠.”
또 한 사람은 뇌병변으로 말이 어눌한 40대 중반의 여성 중복장애인이었다. 온몸을 비틀어가며 쥐어짜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그러다 보니 말을 하려고 하면 가족이 먼저 물어봐 주었다.
“화장실 가고 싶어?”
“이거 먹고 싶다고?”
그 말에 도리도리 하거나 끄떡거릴 뿐이었다. 말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말 들어줄게. 하고 싶은 말 해봐요.”
김현영이 그렇게 말하고 기다려주었다. 여성은 울었다.
"그런 말, 아무도 안 해줬어요. 말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날 이후, 내담자는 말이 느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기다려주었다.
김현영은 지금 대전과학기술대학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하고, 기업체 특강도 다닌다. 대전장애인자립생활대학을 세운 그가 강조하는 말이 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있어요. ‘너 가만있어, 내가 다 해줄게.' 대신하지 마세요! 기다려 주세요.”
장애인에게 자립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기회의 문제다.
KBS 3 라디오에 출연하며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상담할 때도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같이 공감하다 보니 제가 오히려 치유받는 느낌이 들어요.”
신문과 잡지에 글도 쓰게 되었다. 재미있다고들 했다. 장애인의 글이지만 '꿀꿀하지 않다', '밝아서 좋다'는 말을 들었다.
대학원에서 함께 다닌 분들이 책을 내보라고 권했다. 지도교수는 간곡하게 설득하고 출판사도 주선해 주었다. 살아온 이야기를 진솔하게 말하듯이 담았다. 2년 걸려 준비했고, 지난 1월 그 책이 나왔다. 책이름은
<애, 나는 낮에도 깜깜한데?>. 두 번째 책으로 그동안 상담한 심리상담 사레집을 준비하고 있다.
“언제까지 하실 겁니까?”
곧바로 그가 답했다.
“죽는 날까지요.”
멈칫한 적은 있지만, 멈춘 적은 없었다.
발레리나에서 상담사로, 교수로, 그리고 저술가로. 그다음은 어딜까.
김현영에게 장애는 장애가 아니었다.
김승월의 브런치북에서는 '겪고 나서 깨달은 이야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들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