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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약점을 보여주고, 마이크는 약점을 가려준다.

그래서 라디오가 좋아요

by 미라인

" TV에서는 진행자가 잘못한 일이 터졌다 하면 시청자들이 완전히 까발려놔요. 그 가슴에 왕소금을 뿌려서 반 죽여 놓는데 라디오 청취자 분들은 감싸주기도 해요. 정이 많아요. ‘네가 지금 비록 실수를 했더라도 우리는 용서할 수 있어. 더 힘을 내서 방송 더 열심히 해.’ 이럴 때도 있어요. " MBC라디오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 쇼'의 김혜영 씨가 제게 했던 말입니다. 라디오와 TV, 둘 다 진행해 보면서 겪어보고 느낀 점이랍니다. 라디오청취자와 TV시청자는 그렇게 다르답니다. 강석 씨도 같은 말을 했어요, 라디오 청취자가 정이 많다고.

IMG_1875.JPG 강석, 김혜영 씨, MBC 라디오에서 2011

라디오 청취자와 TV 시청자의 성향이 다를 수 있겠죠. 라디오는 TV와 달리 무슨 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운전하는 분, 조립하는 분, 재봉하는 분처럼 일하는 분들이 즐겨 듣습니다. 열심히 사는 서민들이 많이 듣습니다. 그 모든 게 편 할 때는 남을 생각하기 쉽지 않지만 어려울수록 남과 도우며 살아가게 되지요.

그 러니까, 남을 이해하는 마음이 넉넉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라디오 청취자들이 정이 많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라디오 PD와 TV PD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옷차림도 조금은 다르고요. 눈여겨보면 기질도 차이가 납니다. 라디오 PD로 처음 입사했을 때, 어느 선배가 한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TV 제작국은 도시스럽지만, 라디오 제작국은 시골 같지." TV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많은 사람이 움직이지만, 라디오 프로그램은 몇몇 스탭과 만드니까 오븟합니다. 다시 김혜영 씨가 한 말입니다. "라디오 사람들은 식구예요. 방송 마치고 나서 밥도 같이 먹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서로가 사생활을 공유하는데 TV에서는 힘들죠. 아무튼 라디오에서는 청취자나 제작하는 사람들이나 다 가족 같아요."


라디오의 제작 필수 장비인 마이크와 TV의 필수 장비인 카메라의 특성도 완전히 다르지요. 카메라는 세밀하고 정확한 시각 정보를 보여줍니다. 마이크는 카메라 같은 정보를 전하지 못하지만, 감성적인 청각 정보를 전해줍니다. 정보의 양과 질면에서 카메라는 월등하지만, 정서면에서 마이크도 강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감동적인 음악은 보이지 않아도 마음을 흔드는 것처럼요.


마이크와 카메라는 용도가 다르니까. 쓰임새도 다릅니다. 고발 프로그램에서는 생생한 화면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카메라는 민망한 상황, 추악한 짓과 같은 모습을 그대로 찍어서 보여주죠. 욕망의 그늘 까지도 담아냅니다. 말 그대로 인간의 약점을 포함한 여러 면을 드러내줍니다. 마이크는 그런 기능이 없습니다. 소리로만 전하다 보니, 부끄러운 표정도 감춰주고, 못된 모습도 전해줄 수 없습니다. 그만큼 부끄러운 부분, 약한 모습도 가려주게 됩니다.


그래서 장애인 프로그램 만들 때는 라디오가 출연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줍니다. 약점을 가려주니까요. 저는 시각장애인 프로그램을 여러 차례 만들었는데요. 그분들이 그런 말해요. "TV라면 출연을 사양했을 거다. 내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요. 그래서 그런 말이 나왔나 봅니다. "카메라는 약점을 보여주고, 마이크는 약점을 감춰준다."


사람의 능력도 카메라와 마이크의 성능처럼 차이가 나죠. 어떤 능력이 뛰어나면 뛰어난 대로 쓸모 있고, 뛰어나지 않으면 뛰어나지 않은 대로 쓸모가 있겠지요. 기구나 기기는 언젠가 다 쓸모가 있습니다. 사람도 , 능력에 따라서 쓸모가 다르다고 생각하면, 모두가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신다면, 자신의 능력을 탓하기보다는 자기의 쓸모를 살피는 건 어떨까요? 마이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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