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셨나요? 무심히 듣다 가도, “이 소리가 참 좋구나.” 감탄한 적이 있을 겁니다. <라디오오디오제작>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 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낙엽 밟는 소리요.” 낙엽을 밟으면, 낙엽소리 그 자체보다, 가을이라는 계절의 정취가 진하게 느껴지지요. “아침의 참새 소리요.” 다른 학생이 답했습니다. 참새는 떼 지어 다니며 시끄럽게 울기도 합니다만 몇 마리가 소리 내면 정겨운 느낌을 줍니다.
“가을 풀벌레 소리”와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 가 좋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지난 해 수업에서 같은 질문했을 때는,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보슬비 소리” 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소리는 듣는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 같은 소리라도 달리 들립니다. 듣는 사람의 경험이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소리가 다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리를 가장 좋아하나요?
방송사 햇내기 라디오PD 할 때입니다. 장명호 선배PD가 물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가 뭔 줄 아니?”. 우물거리는 저에게 선배는 일러 주었습니다. “동굴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도 그중 하나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 TV 광고에서 나뭇잎 끝에 맺힌 물방울이 방울져 물에 ‘퐁당’ 떨어지는 맑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환경 캠페인 TV 광고에서 예쁜 물방울 소리를 들은 기억도 났습니다.
‘신 한국기행, 고향의 소리’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 때였습니다. 충청북도 단양의 고수 동굴을 찾았습니다. 녹음기를 메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동굴에는 여울도 흐르고, 웅덩이에 고여 있습니다. 너른 동굴에서 갈라진 좁은 동굴로 들어섰습니다. 공원에서 도와주어서, 아무도 없는 좁은 동굴로 나 혼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바닥 한쪽에는 작은 실여울이 흐릅니다.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를 실여울 줄기에 대고 눈을 감습니다. 차갑고 깨끗한 물이 머리위에서 흘러내리며 온몸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생생한 물소리에 흐르는 실여울 모습이 눈 감아도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동굴 천정에는 종류석이 고드름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종류석은 물기에 젖어 있는데요, 종류석 맨 끝에 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방울방울 떨어집니다. 물웅덩이를 찾았습니다. 종류석 물방울이 한 방울씩 물 웅덩이에 떨어지는 자리에 마이크를 댔습니다. 퐁당 소리는 좁은 동굴 안을 울리며 파문처럼 퍼집니다. 맑고 깨끗한 물의 느낌이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왜 이 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 꼽는지 알 것만 같았습니다.
몇 해 지난 뒤였습니다. 방송사 음향효과실에서 작업할 때입니다. 동굴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필요해서 효과맨에게 부탁했습니다. 두 종류의 물방울 소리를 가져왔습니다. 제가 고수동굴에서 들었던 소리보다 어둡게 들렸습니다. 더 맑은 소리를 부탁하니 다른 소리로 세가지를 가져왔습니다. 여전히 마음에 차지 않았습니다. 효과맨은 볼멘소리를 냈습니다. “솔직히 뭐가 안 좋다는 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까다롭게 억지 부린다고 여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퇴짜를 놓은 이유는 단지 더 좋은 소리를 들어 봤기 때문입니다. 효과맨은 내가 들어본 그 소리를 들은 경험이 없으니까 자기가 준비한 소리가 좋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좋은 소리 들어본 사람만이 좋은 소리를 알아 낼 수 있습니다.
좋은 오디오 콘텐츠를 만들려면 많은 소리를 들어봐야 합니다. 방송사에서 일 할 때, 시골 출신 엔지니어들이 도시 출신보다 더 마음에 들게 녹음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연의 소리를 더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소리도 아는 만큼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