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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월 Jun 14. 2024

의 좋은 형제

확대경 선택

지난 5월 초, 할아버지 세 분이 한꺼번에 여의도에 있는 아이루페 사무실에 찾아오셨습니다.  그중 한 할아버지는 몇 달 전부터 서너 차례 아이루페에 상담 전화했던 분입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아이루페가 저시력 보조기에 전문인 거 같아서 전화했다고 했어요, 상담해 보니까 시력이 아주 불편한 것 같아서, 저희 사무실에 오셔서 여러 가지 확대경을 직접 사용해 보면서 선택하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날,  할아버지는 시력이 불편한 할아버지 두 분을 모시고 오신 겁니다.

두 할아버지는 친형제였고요, 안내해 준 분은 사촌형제처럼 보였습니다. 사촌형제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눈이 좋으셨고요. 형제 할아버지는 모두 <망막색소변성증>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질환은 야맹증으로 시작해서 나이 들면서 서서히 시야가 좁아지는 데, 심하면 시력을 잃기도 합니다. 이 질환의 원인 중 하나가 유전인데요, 안타깝게도 현재까지는 치료법이 없습니다.  


동생할아버지가 시력이 더 불편하다고 하네요. 동생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쓰시는 확대경을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샀다는데, 청유리로 만든 확대경이었습니다. 한 개로는 잘 보이지 않아서 2개를 겹쳐서 사용했다고 하네요. 확대경을 겹쳐서 본다는 아이디어는 놀랍습니다. 하지만 글자가 크게 보여도 청유리의 푸른빛이 겹치니까, 렌즈가 어두워져서 잘 보이지 않네요. 게다가 렌즈가 낡아서 많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눈이 나빠서 그러려니 하면서 참고 사셨나 봐요.

여러 종류의 확대경을 직접 사용해 보더니, 할아버지는 독일 명품 확대경, 에센바흐사의 ‘모빌룩스’ 3.5배(모델번호 15113)를 골랐습니다. 독일은 광학이 발달했지요, 에센바흐 렌즈가 우수해서 상이 선명하고, LED 조명등이 달려서 어두운 곳에서도 사용하기 쉽습니다.  동생할아버지는 참 잘 보인다며 좋아하셨어요. “이런 확대경이 있는 줄 몰랐어.” 할아버지들은 신기 해했습니다. 

모빌룩스 확대경

두 할아버지 차림새가 넉넉해 보이지 않아서, 저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장애등급이 있으면, 의사 선생님 처방을 받아서 10만 원 정도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형님 할아버지는 “나도 장애등급 받았으니, 다음에 처방받아서 사야겠다.” 고 말씀하세요, 그러자 동생할아버지가 강권하네요. “힘들게 찾아왔는데, 온 김에 하나 사세요.”  


사촌형제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지갑을 열어 카드를 꺼내 주었습니다. “약속 잡기 힘들었어. 세 사람이 겨우 시간 맞추어 찾아왔는데, 온 김에 사 가야지, 언제 다시 오겠어. 두 개 주세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생할아버지가 가로막았습니다.

“제가 게산 할게요. 형님 것도 주세요” 라며 사촌 할아버지 카드를 뺏고는 당신 신용카드를 내미셨습니다.


형님 할아버지가 소리쳤습니다. “내 건 내가 산다. 돈 내지 마. 나는 나중에 보조금 받아 살게. 너만 사”. 동생할아버지가 씩씩거리며 목소리를 높이네요. “형도 안 보이잖아요. 여기 다시 오기 힘들어.”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한 말씀 덧붙이시네요. “형은 혼자 사니까 더 필요하잖아요.” 세 분이 다투다가, 동생  할아버지가 확대경 두 개를 결재하셨습니다.


세 분 할아버지가 소리 높여가며 이 말 저 말 주고받는 모습에서. 이선균 주연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 장면이 떠 올랐습니다. 의 좋은 삼 형제가 치고받고 싸우듯 하는데도 정이 흠뻑 담겨있던 그 분위기와 흡사했습니다.

의좋은 형제 Chat GPT Image

아이루페의 다른 직원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의 좋은 형제> 이야기가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추수를 마친 날 밤에. 형님이 동생 살림을 걱정하며 동생집에 몰래 볏단을 날라서 동생 낟가리에 놓습니다. 동생도 형님 살림이 걱정되어 볏단을 날라서 형님 낟가리에 놓았죠. 이튿날, 형님과 동생은 자기네 낟가리가 줄어들지 않아서 이상하다 여깁니다. 다음 날 밤에. 두 형제는 서로 볏단을 지고 몰래 갖다 주려고 가다가 길에서 서로 마주치게 됩니다.


요즘에는 가족 사이에도 재산 다툼을 벌이는 소식을 종종 듣기도 하죠. 삭막한 이 세상에 아직도 가슴 따듯한 분이 적지 않은 거 같습니다. 


아이루페 슬로건은 “행복을 전해드리는 작은 아이디어”입니다만, 그날에는 의 좋은 형제 할아버지들로부터 ‘행복’을 전해 받았습니다. 할아버지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습니다. 좋은 확대경으로 편리하게 사시면 좋겠습니다. 세 분 할아버지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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