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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월 Jun 26. 2024

내가 쏜 화살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방송과 시

“언제나 신입사원의 마음가짐으로 출근하면 어떨까요?”

새내기 PD 시절,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들은 말이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신숙 아나운서가 진행한 ‘푸른 신호등’ 오프닝 멘트였다. 잔뜩 긴장하고 뭔가 잘해보고 싶던 때라서 그 말이 그대로 머리에 박혔다. 그 뒤로 내내 신입사원처럼 직장 생활하려고 나름 애썼다.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칠 때도 학기마다 이 오프닝 멘트를 인용하고 있다. “늘 신입사원처럼 직장 생활하면 어떨까요?”


 "여러분이 쏜 화살은 어디로 날아갔을까?"30여 년 전쯤, 라디오 제작 2부 부회의 때다. 황기찬 부장님이 ‘여러분이 만든 프로그램이 어떤 청취자에게는 깊은 영향을 줄 것’이라며 그렇게 말했다. 황선배님은 프로그램 제목을 시처럼 짓는 재주가 남달랐다. ABU에서 대상을 안겨준 <찍을 수 없는 사진>,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국제피처회의’에서 발표했던 <무수한 이별>의 제목들이 그분 솜씨다. 해서 말씀도 멋지게 시처럼 지어냈다고 생각했다.

     

  한참 지나 서다. MBC 원로 PD이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지낸 서규석 대선배님께서 "내가 쏜 화살은 어디로 날아갔을까?"란 시구를 인사동 MBC 시절에 소개했다는 말을 들었다. 서선배님이 상무였을 때, 신입사원 연수에서 황선배님을 비롯한 당시 수습사원들에게 들려주어 감동을 자아냈단다. 서선배님을 일터에서 직접 뵌 적은 없다. MBC도서실에 비치된, 그분의雅號를 딴 <松齊文庫>를 볼 때마다 그분에 대한 존경심에 머리를 숙이곤 했다. <松齊文庫>는 방송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영어와 일본어 원서들이었다.    

  

Henry Wadsworth Longfellow(1807~1882)

  훗날 출처를 찾아보니,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 Henry Wadsworth Longfellow(1807~1882) 시 <화살과 노래는> The Arrow and the Song의 첫 구절이다. 방송과 연관 지어보면, 방송의 영향과 방송 제작자의 책임감을 되돌아보게 해 준다. 원문을 번역하여, 몇 자는 빼고, 더러는 덧붙여 창작하듯 번안했다. 고쳐 쓴 그 시를 나의 퇴임식 때, 퇴임사 클로징으로 갈음했다.


            화살과 노래는     


내가 쏜 화살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한순간에 저 너머로 사라진 그 화살을

바라본들 볼 수 있을까?     


내가 부른 노래는 어디로 울려 퍼졌을까?

한순간에 저 너머로 울려 퍼진 그 노래를

귀 기울인들 들을 수 있을까?     


먼 훗날 세월이 흘러 흘러 흐른 뒤에야

나는 다시 보았네, 떡갈나무 밑동에

그대로 박혀 있는 옛 모습 그 화살을    

 

먼 뒷날 시간이 가고 가고 간 뒤에야

나는 다시 들었네, 친구의 가슴에서

그대로 울리고 있는 그 시절 그 노래를     

화살과 노래는  Chat GPT 4.0 Iamge

  롱펠로우는 방송이 없던 시대에 이 시를 지었다. 그럼에도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으로 방송의 본질을 담아냈다. 한국에는 이런 시가 없을까. 오픈 AI인 Chat GPT를 이용해 찾아보았다. 요즘 대학 강의 준비할 때나 성경 공부할 때, SNS에 올리는 글의 삽화를 만들 때도 유료 버전인 Chat GPT4.0을 활용한다. 어처구니없는 반응도 보이지만, 놀랄만한 답도 내놓는다.


  처음에는 김수영, 김혜순, 문정희와 같은 시인의 작품에서 찾아보라고 답했다. 다른 각도로 질문하니 공감하기 힘든 추천이 나왔다. 해서 네이버에서 개발한 무료 인공지능 서비스인 ‘클로버엑스’로 검색했다. 먼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골랐다. 좀 더 낭만적인 시로 부탁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과 김수영의 '풀'을 내놓았다. 그런대로 '풀'이 나아 보였다.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 Chat GPT 4.0 Image


  흔히들 이 시에서 '바람'은 '정치권력', '풀'은 '민초'라고 여긴다. 하지만 '바람을 '방송'이라고 하고, ‘풀'을 '시청자'라고 보면 어떨까. AI ’ 클로버엑스’의 답변이다.

 "이 시를 방송과 시청자의 관계로 해석하면, 방송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따라 시청자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방송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긍정적이면 시청자는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방송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부정적이면 시청자는 소극적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또, 바람이 불지 않으면 풀닢이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방송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없으면 시청자는 반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방송이 시청자의 관심을 끌고, 시청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시는 시인이 쓰지만, 해석은 독자 몫이다. 방송 프로그램도 방송사가 만들지만, 수용은 시청자 나름이다. 우리가 쏘아 올린 화살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어떤 이의 가슴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도 되지만 두려움이 앞선다. 누군가의 등 뒤에 꽂혀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내진 않았을까.


이글은 MBC사우회보 2024년 6월호 ' 김승월칼럼'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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