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이삿짐을 싸며 제가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석 달 전쯤 이사했는데요, 실평수로 열 평쯤 줄여서 이사 가다 보니, 가구며 짐을 30%쯤 치워야 했습니다. 할 수 없이 가져갈 물건, 버릴 물건을 가리게 되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모두 꺼내보니, 잊고 지냈던 방송자료가 적지 않게 나왔습니다. 그동안 제가 기고했던 글도, 저를 다루었던 MBC 가이드, MBC 사보와 기타 잡지, 신문 기사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지방 취재 프로그램인, <한국기행, 고향의 소리>, <신 한국기행, 길 따라 물 따라> 취재 녹음했던 카세트테이프와 육필 원고, 수첩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MBC 라디오편성부에 입사하던 첫해, 수습이 떨어지자 마다, <한국기행, 고향의 소리>를 맡았습니다. 당시 담당 부장이셨던 장명호 부장님이, '편성 PD도 PD감각을 키워야 한다'며, 취재 구성 프로그램을 맡겼습니다. 직접 취재녹음하여, 편집하고, 원고를 써야 했습니다. 입사 6개월의 새내기로서는 벅찬 일이었지만, 제게는 행운처럼 여겨졌습니다. 여행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온 제가, 회사 일로 전국 가고 싶은 곳을 다니며, 구경하고 취재할 수 있었으니까요. 더구나, 선임 PD가 저를 내버려 두듯 일절 간섭을 하지 않았으니 실수도 많았겠지만, 모험도 실컷 해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제가 했던 모든 일은 제식으로 하고 싶어 했습니다. 저의 색깔을 드러내고 싶어 했지요. 그러다 보니, 색다른 소리를 귀 기울여 찾아 헤매었습니다. 덕분에, 숨어 사는 분들의 맛깔스러운 사투리, 향토민요 등을 녹음할 수 있었습니다. 연륜이 쌓인 뒤로는 회사에 요구하여, 최신형 디지털 녹음기, 고성능 마이크를 이용했고, 라디오 프로그램입니다만, 대형버스만 한 녹음중계차를 타고 취재 가기도 했습니다. 첨단 기기는 소리를 명료하고 생생하게 증폭시켜 들려주었고, 저의 소리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훈련시켰습니다.
한 때는 라디오 음향효과실 담당을 하게 되어, 효과음을 채음 하며 경험을 넓혀갔지요. 그러던 중에 사우 박상규 씨가 한국통신에서 펴내는 잡지에 <소리여행>을 써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했습니다. 덕분에 <소리 기행>을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짐정리하다 그 잡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MBC 라디오에서는 <MBC한국민요대전> 사업을 했습니다. 사라져 가는 전국의 구전민요를 찾아내어, CD로 만들고, 채보하여 해설을 곁들인 자료집을 발간했습니다. 이 사업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박경식 PD가 처음으로 제안했었고, 진척이 되지 않던 것을 최상일 PD가 헌신적으로 추진함으로 빛을 보았습니다. 당시 라디오 PD 상당수가 참여한 역대급 사업이었습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는 처음으로 한국방송대상의 대상을 받은 기념비적인 사업이지요. 지금도 MBC 라디오에서 스폿 프로그램으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가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민요대전>에서 경상북도(대구포함) 편을 담당했습니다. 박관수 PD가 기초조사를 해서 대구와 경상북도 25개군에 노래할 분 후보들을 찾아놓았는데, 저는 현장을 다니며 녹음할 사람을 확정하고, 녹음 장소를 정한 뒤에, 엔지니어 들과 함께 다시 출장 가서 녹음을 하고 이를 책자와 CD로 발간해 낸 작업을 했습니다. 그 당시 MBC 가이드와 MBC 노동조합신문에서 경상북도 민요 취재 기를 기고한 적이 있는데, 그 자료를 이번에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세월 저편에 묻혀있던 글들을 꺼내 보며, 이 자료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브런치 스토리에 올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리기행이란 기행문 형식도 독특하고, 민요 취재기도 색다른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제게는 방송원고 형식의 여행기 원고를 상당히 갖고 있습니다.
브런치 메거진에 담아보려고 제목을 골랐습니다. 저의 두드러진 이야기는 < 한국 기행, '고향의 소리'>와 <MBC한국민요대전 '경상북도'편,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입니다. 두 기둥의 이야기를 아우르는 제목으로 "우리의 소리, 고향의 소리'로 정했습니다.
도시화, 산업화로 이제는 잊힌 '고향'이지만, 대중문화 홍수에 밀려 사라져 가는'노래'지만,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추억'을 , 젊은 분들에게는 '지난날'을 전해드리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