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 뿌리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나 대체할 수 있을까?
"김편집장, 임시로 대신할 유능한 편집장을 섭외했어요. 사우회보는 신경 쓰지 말고, 치료에만 전념하세요."
사우회 회장님의 말씀에 고개 숙여 감사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몸도 성치 않으니 새로 섭외한 편집장과 계속 일하시도록 편집장 사의를 표했다.
취재 중 낙상 사고로 <외상성 뇌출혈> 진단을 받고 입원한 지 한 달도 채 못돼 서다. 물론 편집장을 철밥통처럼 끌어안을 생각은 1도 없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라도 물러 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을 맡으면 중독처럼 빠져드는 내 일 습성 때문에 몰입해서 일했던 터다. 그때 알았다. 언제라도 내 존재가 다른 이로 대체될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을 얼마나 작게 만드는지를.
"조직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대체불가 인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가 탈 나면 다른 누군가가 나서서 그 일을 매끄럽게 처리해야 조직이 잘 돌아간다 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조직원은 여러 개 중 하나의 부품 아닌가. 조금이라도 훼손되면 다른 부품과 바꿔치기하면 된다. 조직은 산다. 개인은 언제라도 버려질 수 있다.
현대는 풍요의 시대다.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층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풍요로움은 하나하나의 개별 가치를 낮춘다. 옷만 해도 그렇다. 갖가지 옷들을 갖고 있고, 언제든지 새 옷도 장만할 수 있으니, 옷의 귀함을 잊게 한다.
인간관계도 늘어났다. 마을에서는 이웃들과 산다. 직장에서는 동료들과 일한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린다. 언제라도 새 얼굴을 만나 볼 수 있으니, 사람 귀한 걸 모르고 산다.
풍요 속의 아쉬움이 있다. 쌀 한 톨의 소중함을 잊은 지 오래다. 쌀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니, 쌀의 절대 가치는 사라졌고,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일을 해도 대안을 찾으니 플랜 B를 준비한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넘쳐나는데, 왜 모자랄 때처럼 이리 허전한가. 사람도, 정(情)도, 마음도 그렇다.
"오직 한 사람을 찾아서." 라디오 드라마 연출로 일가를 이루었던 전 MBC라디오 황기찬 PD가
'라디오 드라마 제작론'에서 캐스팅의 기본을 그리 말했다. 특정 배역을 맡을 성우는 그 역을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성우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 말을 곱씹으며 따라 해 봤다. 프로그램의 진행자, 작가들을 선정할 때도 그런 정신으로 애썼다. 최고의 제작진과 함께 하면 프로그램은 빛났다.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는 조금이라도 더 잘할 수 있는 오직 한 사람이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줄 이는 오직 한 사람뿐이다. 병상에 누우니 그 사람이 보였다.
가족의 소중함이 새삼스럽다. 의식 잃고 입원하던 나를 가슴 찢으며 애통해했던 사람은 내 아내, 내 딸, 여동생이다. 어느 누가 그들보다 더 애달파 할 수 있었을까. 친구도 그렇다. 발 동동거리며 가슴 조이며 지켜본 친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대신할 수 없다. 내게는 대체불가한 이들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오직 한 사람이면 좋겠다. 관계는 많아지고, 아는 이름은 늘어났지만 나를 소중히 붙드는 이는 줄어든듯하다. 뿌리 없이 바람에 떠도는 부초 같다. 대체 불가한 존재가 된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에 뿌리내린다는 뜻 아닐까. 뿌리내려야 흔들리지 않는다. 어깨 펴고 자존감을 누릴 수 있다.
지니까 아쉬워 꽃은 더 곱다.
지나가버리니까 안타까워 이 순간은 더 소중하다.
오직 당신,
내 마음에 뿌리내린 단 한 사람.
당신이 있어 나는 오늘도 흔들리지 않는다.
당신이 있어 모자람 속에서도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