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본 세상, 서서 본 기적
병상에 누워 보니 알겠습니다.
서 있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이미 기적이었습니다.
"난 지하철 타면, 자리에 앉지 않고 그냥 서서 가. 서 있는 것도 운동이 되거든."
친구가 한 그 말을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었다. 재활치료실에서 '경사 침대'를 보고서야, 그 말이 맞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일어설 수 없는 환자의 몸통과 하체를 벨트로 메트에 고정해서 비스듬히 세우는 침대다. 하루 종일 누워 지내는 환우들이 30도에서 60도 경사로 세워진 침대에 20여 분 누워서, 비스듬하게나마 서 있는다. 그날 처음 알았다. 서 있다는 사실 하나가 얼마나 큰 은총인지
재활치료실에 들어서면 낯선 풍경을 만난다. 재활 치료실은 뇌질환이나 골절로 거동이 불편한 환우들이 신체활동을 통해서 재활 운동 하는 곳이다. 이곳에 걸어서 들어오는 환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대부분은 휠체어나 침대에 누운 채 들어온다. 나도 처음엔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고, 지금은 걸어서 들어온다.
환우들 중에는 자기 힘으로 휠체어에서 내려, 발 하나, 손 하나 자기 마음대로 놀리는 분이 드물다. 운동 기구에서도 안간힘 써서 한 발, 한 발 뗀다. 링거나 콧줄, 소변줄을 단 환우, 고개를 세우지 못해서 휠체어 등받이에 머리를 밴드로 고정한 환우들도 운동한다. 트랜스포머처럼 생긴 웨어러블 로봇도 있다. 팔, 다리, 몸통을 로봇 안에 끼워 넣고 로봇이 작동하는 대로 팔, 다리를 움직여, 신체를 일깨운다.
안간힘 쓰는 환자들 곁에서 배우자, 자녀, 부모, 간병인들이 안타깝게 지켜본다. 고통 속에서도 살아 내려는 의지와 이를 받쳐주는 손길이 생명을 흔들어 깨운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사고 직후에는 휠체어에 실려 들어왔고, 손끝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은 난간을 붙잡고 계단을 오른다. 러닝머신의 속도도 1.5에서 3.5로 높였다. 숫자보다 놀라운 건, 내 발이 다시 땅을 딛는다는 사실이다.
걸음 하나하나가 무겁다. 아이가 처음 발을 떼듯, 나는 다시 태어나듯 걷는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그 순간마다, 나는 ‘살아 있다’는 확인을 받는다.
운동치료실을 지나면 작업치료실이 있다. 작은 핀을 집어 구멍에 꽂고, 고무 찰흙을 잘게 떼어 컵에 담는다. 빨래집게를 하나하나 이어 탑을 세운다. 유치원생 놀이처럼 보이지만, 여기서는 다시 태어나는 의식이다. 기절해 누워 있던 내가 이제는 핀셋을 잡고 손끝을 움직인다. 몸을 훈련한다는 것은 마음을 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순간마다 나를 일깨운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쓰러져 보기 전에는 모른다. 땅을 딛고 선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운동인지, 얼마나 눈부신 기적인지.
내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인다는 게 이렇게 고맙고 신비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움직이며 사는 생활 그 자체가 운동이고, 기적이다. 탁닛한 스님의 말씀 그대로다. “물 위를 걷는 게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게 기적이다.”
환우들의 신음에도, 간병인의 손길에도, 창밖 흔들리는 나뭇잎에도 생명은 깃들었다.
숨 쉬고, 서고, 걷는 것.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지금, 이 땅 위를 딛는 내 발걸음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