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시작

닫힌 문이 열어주는 길

by 김승월
하나가 마무리 지으면,
받아들이든 말든 새로운 날은 시작된다



치유의 한계


병원 복도 벽에 붙은 문구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치료는 의료진이 하지만, 고쳐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 문장을 한참 봤다. 약과 수술로는 닿을 수 없는 어떤 경계가 있다는 뜻일까. 같은 치료를 받아도 낫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완치라는 건, 어쩌면 인간의 힘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먼 세상 같았다.


뜻 모를 선물


퇴원 날짜를 받았다. 의식 잃은 채 실려 들어온 병원. 한 달 뒤, 나는 내 발로 3층 계단을 오른다.

비틀거리며 간병사에 의지해 걷던 나였지만, 지금은 러닝머신에서 3.5 속도로 걷는다.


기쁨만은 아니다. 인지의 영역은 여전히 무너져 있다. 단기 기억은 흐릿해졌고, 인지 능력 테스트 때마다 머릿속은 하얗게 되었다. 작업치료사 앞에서 외운 단어를 찾아내려 애쓰다가 쓴웃음을 흘리곤 했다.


“탤런트도 살리고, 나이 든 사람과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거예요.”

의사 친구 크리스가 해준 말 덕분에 병상일기를 꾸준히 써왔다. 글 쓰기가 나의 인지기능을 일깨우지 않았을까. 모든 일에는 단 한 가지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일 마다 인간으로서는 헤아리기 힘든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선물처럼 감사해야 하는 이유다.


닫힘이 부르는 열림


인지훈련보다 부담스러운 건 뇌출혈로 다친 부위를 안고 사는 일이다. 넘어지거나 부딪치지 않도록 바짝 긴장하고 지낸다. 예상하지 않았던 문제가 일어날까 봐 신경 쓰인다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와 마주하게 된 셈이다. 돌이켜 보면, 과거에는 현재가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였다.


건강했던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스스로 마무리 짓지 않아도, 삶이 알아서 마무리 짓는다. 받아들이든 말든, 새로운 날은 시작된다. 그 시작 역시 내가 정할 수 없다. 퇴원은 완치가 아니라, 또 다른 치료의 출발선이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나아 있더라. 세월이 약이야.”

큰 수술을 두 번 겪은 친구가 해준 말이다. 세월은 닫히면서 열리는 문이다. 그 문 앞에서 우리는 설레고 두려워하면서도, 발을 떼게 된다.


세월의 문 앞에서


퇴원은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오는 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시작의 끝’, 또 다른 이에게는 ‘끝의 시작’이다.


문은 닫히기도 하고, 열리기도 한다.

닫히는 순간은 또 다른 세상의 입구다.

과거를 향해 닫혔던 문이, 동시에 미래로 향해 열린다.


nat-pATOsGaPaSE-unsplash.jpg Na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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