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에 묻힌 빛
잃은 것들 틈새에서, 뜻밖의 것들이 피어났습니다.
무언가를 얻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고, 잃으면 또 다른 것을 얻게 된다. 완벽하게 좋은 일도, 온전히 나쁜 일도 없다. 모든 일은 여러 얼굴을 지나고 있다.
사고로 잃은 것을 세면 셀수록 목록은 끝없이 길어졌다. 그 목록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그늘이 깊을수록 빛은 도드라지니까.
무엇보다도 살아있음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움직이고, 스스로 일어나 걷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한순간에 모든 동작이 멈출 수 있음을 알았기에, 지금의 몸이 기적처럼 다가왔다.
사람의 소중함도 새롭게 다가왔다. 가족의 짙은 울음, 친구들의 애틋한 눈빛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소홀했던 관계들이 얼마나 귀한지 깨달았다. 매달릴 이와 함께 울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내 삶의 선물이었다.
병상 일지를 쓰다 보니, 어렵던 시절이나 아픈 기억들이 불쑥불쑥 되살아났다. 지금은 그럭저럭 부족함 없이 살다 보니, 고달팠던 기억들이 저 너머에 있었다. 힘든 시절을 함께 넘은 내 가족, 그 시절의 친구들이 떠 올랐다. 병고와 죽음의 두려움을 느낄 때면, 먼저 떠난 이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특히 어머니와 2년 전 돌아가신 형 생각이 잦았다. 그토록 엉켜 살았으면서, 그토록 좋아했으면서도 끝내 말하지 못했다.
"엄마, 내가 얼마나 엄마 좋아하는지 아세요?".
"형이 있어서 늘 든든했어요. 난, 형이 자랑스러워요".
끝내 전하지 못한 고백이 한스러웠다. 이제라도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나누고 싶어 진다. 이 또한 사고가 준 선물이다.
이틀 치의 기억이 지워진 채 깨어났을 때, 몸만 살아있는 상태라는 게 얼마나 위태로운지 실감했다. 나 역시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강제로 누운 채 보낸 40여 일은, 역설처럼 내게 깊은 휴식이었다. 요셉수도원 이수철 신부님은 '대피정'이라고 축하해 주었다. 평생, 일로 꽉 채웠던 시간을 비우고,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모처럼의 한가로움도, 병상 덕이었다.
누군가는 이런 깨달음을 두고 “뭘 대단한 것처럼 요란 떠느냐”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라고 고백하지 않으셨나. 깨달음이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병상에서의 체험이 내 가슴에 새겨졌다.
이번 사고로 나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만큼 얻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빛나듯, 아픔이 기쁨을 깊게 해 주듯, 상실은 남은 것을 더욱 귀하게 만든다.
씨앗이 썩어야 싹이 튼다. 꽃이 져야 열매 맺는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삶이 눈을 뜬다.
내 안의 어둠이 흙이 되자, 그 흙 위에 꽃이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