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28년 동안 ‘쓰고 싶다’, ‘쓰고 살 수 없을까?’ 고민했다. ‘써도 된다’고 대답해 주는 내면의 소리도 있지만 쓰면 안 되는 이유를 끝없이 찾으며 방황했다.
글을 쓰면서 먹고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서점에 가면 좋은 책이 많은데 나는 그만큼 쓸 자신이 없었다. 간혹 서점에서 그냥 그렇고 그런 책을 발견하면 나도 그럴까 봐 겁났다. 별 볼 일 없는 나까지 글 쓰겠다고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더 이상 내 의지로 맞설 수 없는 순간에,
삶에서 만나는 장애물로부터 도망칠 곳이 아무 데도 없을 때,
마주하기 위해서 글을 썼다.
나의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안아주기를 바란다.
텔레비전에서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종종 본다. 유명한 가수들이 직접 나오는 프로그램도 있고, 가수로 데뷔하려고 출연하는 경우도 있고, 무명의 가수가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 나오기도 한다. 성악을 공부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악기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음악을 매개체로 자신의 꿈을 펼친다.
내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가 “변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음색이 있고 몸짓이 있다. 처음 출연할 때부터 자신의 매력을 잘 발산하는 사람도 있지만 쑥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경연 프로그램의 특징상 매회 다음 진출자를 가리느라 경쟁을 시킨다. 이기면 다음에 노래할 기회를 얻고 지면 더 출연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출연자들은 자신의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곡을 선곡하여 더 멋진 모습으로 노래를 잘하려고 애쓴다. 나는 음치에 박치이면서도 출연자들의 노래를 들으며 ‘좋다’, ‘어울린다’, ‘별로다’ 평가한다.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서 누군가의 절실한 노력을 별 생각 안 하고 소비한다. 출연자에게 매력이 있는지 없는지 결정할 때 새로운 변화가 있는지를 보게 된다. 심사위원들도 “당신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어요?”, “당신 이렇게도 할 수 있어요?” 하며 출연자가 변화하고 성장하는지를 눈여겨보는 것 같다.
본인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한 모습을 보면 절로 박수가 나온다. 누군가는 쉽게 해내는 느낌이고 누군가는 경계를 허물고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은 죽을 만큼 힘들거나 절실해야 변한다고 한다. 좋은 습관을 들이고 눈에 띄게 변화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매 순간이 새롭고 다르다지만 현실에서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날이 그날 같고 어제의 내가 내일의 나 같다. 그런데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노래할 때마다 새로운 모습 ‘변화’가 있는지 매의 눈으로 지켜봤다.
결선 무대를 시청하며 마음이 짠하다. 몇 분 동안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무대에서 노래할 때 긴장 때문에 기타만 쳐다보던 출연자가 기타를 들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며 노래한다. 처음 출연할 때보다 눈에 띄게 살이 빠져 보인다. 죽기 살기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살아남고자 노력했구나 싶다. 내 삶의 파도가 훅 들어오면서 결선 무대의 출연자들에 대해 어떤 평가도 섣불리 내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하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지 모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 노래 한 곡을 더 잘 부르려고 얼마나 많이 노력하고 있을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사람’ 가수로 인정받기 위해 경쟁의 무대를 겪어내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내가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TV를 시청하며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다. 하고 싶어서, 할 수밖에 없어서 노래 부르기를 선택한 가수들이 부디 행복하기를 바란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몸과 마음을 챙기고 보살피는데 글쓰기가 좋은 도구가 되어 주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글 쓰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쓰면서 이제는 글을 쓰면 안 되는 이유보다 써야 할 이유가 더 많다. 글을 쓰면서 내 속의 파도를 지켜볼 수 있고, 두려움에 떠는 나를 안아줄 수 있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고,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여전히 흔들린다. 매우 충만하고 감사한 날도 있지만 몹시 흔들려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이 매회마다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인정받는데 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 책을 한 권 내고 매일 글을 쓰면서도 흔들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혼자 투쟁할 때가 있다. 나는 요즘 내 속의 어수선함과 마주하는 용기를 내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느라 치열하게 싸운다. 겉으로 보기에는 혼자 조용히 있는 모습이지만 속은 무기력의 늪과 투쟁과 공허 등이 뒤섞인다.
그래도, 그럼에도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다.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듯이 나도 내 삶의 무대에서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하고 싶어서’ 보다 ‘할 수밖에 없는 일’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소심하게 자꾸 뒷걸음치지만 도망가거나 멈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나도 ‘변화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