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거리는 날

박경리,《버리고 갈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읽으며

by 김작가


내 인생에 봄이 온 것 같고

내 인생에 좋은 날도 있다

봄날은 꽃샘추위로 시리기도 하

할 만큼 해서 홀가분하기도 하고

애를 써도 고단하기도 하다


외로움이 가득 차는 날

기댈 곳은 없고

내 걸음이 흔들린다


어느 방향을 쳐다볼 것인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결정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

소리 없이 눈물 난다




내 속이 덜컹거린다. 시간이 가도 잠잠하지 않다. 어디인지 종잡을 수 없는 나의 밑바닥으로 내려가고 있다. 이럴 때 누군가에게 길고 긴 하소연을 하고 싶지만 나의 밑바닥에 닿지 않으면 허무의 쳇바퀴에서 내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일상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는 사람을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밑바닥으로 끌어당기면 그 사람마저 흔들릴 테니 자중하려고 한다.


마음이 덜컹거리는 날 박경리 선생님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읽는다. “맨몸으로 와서 맨몸으로 간다”라고 말하지만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해지다니 제목에서 코끝이 찡하다. 80여 년의 삶을 살아낸 분의 유고시집 제목에서 치열하게 겪고 선택하고 견뎌낸 사람의 고단함과 위대함이 함께 느껴진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옛날의 그 집〉 중에서-



대문 밖에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리고 ‘나’를 지켜주는 것은 “적막뿐”인 박경리 선생님의 상황을 내가 알 수는 없지만 감정이 동요하며 눈물이 난다. 모진 세월이 가고 늙어서 편안하고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니 찬바람 맞고 오래 서 있었을 몸과 마음을 안아주고 싶다.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은 막막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두려울 때가 있는데 박경리 선생님은 그럴 때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원고지, 펜에 지탱했단다.




글을 쓰면서 나를 지탱하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게 어렵다. 글을 쓰면서 내 밑바닥과 만나서 좋을 때도 있고 괴로울 때도 있다. 혹여 다른 방법이 있다면 갈아타고 싶을 때도 있다. 묵묵히 한 길을 걷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존경스럽다.


삶이 경제적 가치로 평가받는 시절에 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삶의 방향을 잡고 일상에 온전히 머무르려고 글을 쓴다.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만 남겨놓기로 작정한 절대 권력자가 있다면 나는 금방 쓸모없는 잉여로 분류될지도 모르겠다. 몸과 마음을 위해 날마다 운동하고 명상하고 글 쓰며 살아가는 사람일 뿐 가치를 찾을 수 없어서다.


절대 권력자에게 내 생명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나를 쓸모없는 존재로 보지는 말아달라고 항변하고 싶다. 성과물을 내놓으라고 하면 혼자서 날마다 운동과 명상을 해서 중년의 나이에 키도 전보다 커졌고, 스스로를 보살핌으로써 병원 가는 횟수가 엄청나게 줄었고, 글을 쓰면서 내 안의 나와 나 밖의 타인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하고 싶다. 내 외로움을 견디는 힘도 전보다는 나아졌고 병원 가는 횟수가 줄었으니 생활비를 덜 축내므로 경제적 효용도 조금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박경리 선생님의 “모진 세월 가고”라는 말에서 외로움의 더께가 내 가슴을 후빈다. 유명한 작가지만 책상, 원고지, 펜을 붙잡고 ‘모진 세월’을 마주하기가 쉽기만 했을까. 내가 글을 쓰면서 고맙게 여기다가도 도망치고 싶기도 하듯이 유명한 작가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도망가려고 발버둥을 쳐도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중심 잡고 원고지를 매만지지는 않았을까.


먼 거리에서 쳐다보기에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걷고 있다고 여겨지지 막상은 흔들리면서 걸어가는 게 삶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몸과 마음을 보살피기 위해 날마다 운동하고 명상하고 글 쓰는 나를 보면서 일관되게 걷는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내 속이 덜컹거려서인지 박경리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행간에서 한숨을 읽는다. 천성을 바꾸면 편안할까, 바꿀 수는 있는 것일까, 외로움을 많이 타지만 그것과 화내지 않고 잘 지내려 마음 모으는 게 천성을 바꾸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꼬리를 무는 덜컹거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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