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경
해야 할 일, 희망 사항, 불편한 일 등에 떠밀려 살다가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대상을 만나면 안심한다. 쉼의 공간이 생긴다. 생명 있는 존재에게 똑같은 순간은 없다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제자리를 지키는 대상을 만나는 순간만큼은 변함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싶어서 위안이 된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시인과 촌장의 <풍경> 노래
오랜만에 시골에 계신 어머니 집에 가는데 동네 어귀에서 제자리를 지키는 느티나무가 나를 반겼다. 시인과 촌장의 <풍경> 노랫말처럼 제자리로 돌아오고 돌아가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시골 동네에서 변하지 않고 제자리에 있는 느티나무 덕분에 편안하다.
시골 동네에서 제자리를 지키는 느티나무는 어린 시절 학교 다닐 때도 있었다. 30분 정도 걸어서 학교에 다녀야 했는데 나무는 도착지에 다다랐다는 안도감을 주곤 했다. 하교할 때는 ‘집에 가려면 아직 멀었네’, ‘가방 무겁다’, ‘뭐 하면서 걸을까’ 고민하는 지점이었다. 지금은 느티나무를 만나면 ‘2년 전 떠나신 아버지 산소가 있는 곳을 지나가겠구나’, ‘안전하게 시골에 도착했네’, ‘어머니와 좋은 시간으로 물들어야지’ 하며 숨 한번 고르는 지점이다.
자동차로 움직이면 느티나무에서 어머니 집까지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이다. 성인이 된 지금 걸어도 30분이나 걸릴까 싶다. 어렸을 때 ‘행길’이라 부르던 시골길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길은 더 넓어지고 반듯해졌다. 학교 가는 길에 있던 느티나무는 주변의 길이 확장될 때 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살아남았다. 학교가 있던 자리는 오래전에 요양병원으로 바뀌었다. 밭이나 논이었던 곳에 집이나 비닐하우스가 들어서서 내가 시골에 살 때의 기억은 더 가물거린다. 함께 학교 다니던 친구네 집이 있던 장소를 기억으로 더듬기도 하지만 확실치가 않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다가 전학을 간 뒤 연락이 끊어져서 친구들 이름도 몇 명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동네 소식을 첫째 자식의 이름으로 표현하니까 내가 알아듣기 어렵다. 현주, 영옥, 충근… 몇몇 기억하는 이름의 친구이든,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와 함께 느티나무를 지나다니던 친구이든 잘 살아가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시골에 느티나무 하나만 제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지나다니던 추억이 있어서 느티나무가 가슴을 파고들고 시골집 동네의 중심점으로 기억된다. 올해도 시골의 느티나무는 제자리에서 싹을 틔웠다. 건강해 보인다. 제자리를 지키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여름이면 무성한 잎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가을이 되면 곱게 물들다가 겨울이 되면 가지를 드러낸 채 묵묵히 있을 나무다. 생명 있는 존재로서 할 일을 해나갈 거다. 내가 그 곁을 지날 때면 멋진 풍경으로 맞아줄 거다. 내가 시골에 도착할 때 느티나무가 “돌아왔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 속을 다 알아차리기도 어려운 삶이라 누군가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느티나무가 어떤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서 있는지 몰라도 그 자리에 있어 줘서 고맙다. 자기 자리에서 충실하게 살아내는 모습 자체가 아름다운 풍경이다.
내가 다시 시골을 떠날 때 느티나무가 “돌아가니?” 하며 배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