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모임
내 어머니의 올해 나이가 여든다섯이다.
어버이날 어머니와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있을까?
내 살아생전 어머니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더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날 때 함께 있지 못했다. 연세가 드시고, 몸이 아프고, 이 세상을 곧 떠난다고 말씀하실 때 막연했다.
이별의 순간은 내 예상 밖에서 발생했다. 손이라도 어루만지면서 ‘미안합니다, 용서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말할 틈이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입혀준 수의 차림의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말, 듣고 싶었던 말이 갈 자리를 잃어버렸다. 언어가 흩어지고 입은 다물어지고 아득함으로 목이 막혔다.
아버지가 떠난 뒤
내가 놓친 기회는 되돌리지 못하니
알아차리고도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다
살아있는 가족과 기념일이든지 그저 얼굴을 보고자 함이든지 만나서 밥 먹고 웃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어버이날이라고 어머니 집에서 형제들이 모였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오지 못한 형제도 있지만 얼굴을 마주하니 좋다.
상을 두 개 차렸는데 어머니가 자리를 권하는 사위들의 소리를 뒤로 하고 딸들이 먹을 밥상에 앉았다. 코로나 때문에 각자 드문드문 다녀가던 딸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있고 싶은가 보다. 딸 옆에 있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서 어머니의 밥과 수저 젓가락을 옮겼다.
어머니는 딸들과 한 밥상에서 식사하면서도 자꾸만 사위들 밥상에 신경 썼다. 밥도 한 그릇 더 갖다주라고 하고 반찬도 더 주라고 하고 물도 주라며 뭔가를 더 챙기라고 했다.
어머니의 그런 태도가 불편할 때도 있지만 남자를 먼저 챙기며 살 수밖에 없던 삶이었기에 그러지 말라고 잔소리할 수가 없다. 남자를 우선시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의 감정이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고유성이 있다.
내가 앞으로 어머니의 정정한 모습을 얼마나 더 볼 수 있는지 모르는데 그 시간을 오래된 습관에서 나오는 태도에 불평하고 잔소리하며 시간을 보내면 훗날 후회할 것 같다. 어머니가 사위들을 잘 대접하고 싶어서라고 이해해 본다.
밥상머리 대화는 오랜만에 만난 딸들의 반가움으로 채워졌다. 음식에 대한 칭찬에서부터 일상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들쑥날쑥하다. 큰언니가 얼마 전 시골에서 뜯었다는 고사리가 오늘의 메인 메뉴 회보다 인기가 좋다. 직접 뜯어서 만든 쑥떡에 대한 찬사도 이어진다.
사위들이 수저를 내려놓자 밥을 아직 다 못 먹은 딸들에게 어머니는 커피를 타라고 재촉한다. 우리는 밥 다 먹고 커피를 타겠다고 대답한다. 어머니는 전기포트에 물을 끓인다. 우리는 어머니에게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하고 음식을 마저 먹고 이야기도 좀 더 나눈다.
식사 후 힘이 없는 딸이 수박을 자르지 못해 큰사위가 나서서 4등분하고 막내 사위가 나서서 조각내며 왁자해진다. 칼이 무뎌서 그렇다고 변명하는 딸과 힘이 없는데 사위가 해줘서 좋다며 웃는 소리가 집안을 채운다.
커피와 과일로 후식까지 맛있게 먹은 우리는 어머니의 텃밭으로 나가 둘러본다. 열무와 아욱의 새순이 돋아난다. 고라니가 밭에 다녀간 흔적이 여기저기 있다. 고라니가 새순이 올라온 동부를 잘라먹어서 사위들이 텃밭 둘레에 그물망을 치고 퇴비를 옮긴다. 딸들은 부추를 뜯어서 다듬기도 하고 자라기 시작한 상추를 솎는다. 어머니는 집과 마당, 텃밭을 오가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다. 보고만 있어도 좋은가보다. 사위에게 물을 갖다 줘라, 과일을 챙겨라 하지만…….
어머니와 헤어지기 전 포옹하는데 “우리 딸 생일 축하해”라고 말씀하신다. 얼마 후 나의 생일인 걸 기억하고 미리 챙긴다.
예전에 어머니가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해서 서운할 때가 있었다. 어머니에게도 축하받지 못할 만큼 쓸모없는 존재인가 싶어서 서글펐다. 그래서 내 생일마다 어머니에게 나를 낳느라 고생했다고 추앙했다. 어머니에게 축하받고 싶은 마음이 포기되지 않아서 나의 생일 직전에 미리 말해주면서 축하해달라는 말도 했다. 덕분에 어머니로부터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듣곤 했다.
우는 놈한테 떡 하나 더 준다더니 유난히도 기억하지 못하던 나의 생일을 어머니가 챙긴다. 올해는 나의 생일이 언제라고 미리 말하지도 않았는데 기억해 준다. 내 가방에 넣어준 5만 원에 뭉클하다. 어머니와 포옹한 채로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듣다니 내 생일 기억해달라고 우는소리 하기를 잘한 것 같다. 쓸모의 유무를 떠나서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주는 한 사람, 어머니가 있다는 생각에 든든하다.
살아 있어서 좋은 일이 사소한 기쁨 덕분이다. 어머니와의 이런 순간이 내 삶에 온기를 주는 귀한 기억이 된다. 찰나의 좋은 순간이 “살만하다”, “괜찮다” 물꼬를 터주고 “행복하다” 기억하게 한다.
상처를 들추면 끝이 어디인지 모르게 계속 나오고 사랑과 행복에 초점을 두면 좋은 기억으로 물들어간다. “사위 챙겨라”, “여자가 어디” 하는 말을 해도 어머니가 내 곁에 있어서 감사하다. 어버이날이라고 형제들이 교통체증 마다하지 않고 모여서 어머니와 함께 식사할 수 있어서 좋고 어머니에게 생일 축하받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어머니가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한 어버이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