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 노실의 천사》 전시를 보고
글을 쓰는 게 같은 말 반복 같다. 좀 더 그럴듯하지 못하다.
연애만 밀고 당기며 기뻐하고 슬퍼하며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이고 싶은 게 아니다.
글도 구성과 문장력으로 튼튼한 집을 짓고 누군가와 소통하며 인정받고 싶어 한다.
타인의 인정뿐만 아니라 내 속 깊은 곳에서 수시로 고개를 들고 ‘옳다, 그르다, 멋지다, 아름답다, 지질하다’ 판단하는 목소리로부터 인정받고 싶다.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모든 삶이, 모든 예술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눈물로, 살기 위해서 글을 썼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고 보살피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절박함.
몸이 아프고 마음이 고단해서 괴로워하는 ‘나’를 내가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치유는 시작되었다.
온갖 책과 종교인, 강연자들이 말하던 “내려놓는다”라는 말의 의미를 경험했다.
좋은 경험 했다고 살아있는 나의 일상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아름다운 일상’으로 물들며 살기로 방향 잡았지만 내 속에는 ‘겸손한 나’와 ‘무시당하는 나’가 있다. ‘나누고 싶은 나’와 ‘아까워하는 나’가 있고 ‘비우고 싶은 나’와 ‘채우고 싶은 나’가 있다. ‘사랑하고 싶은 나’와 ‘사랑받고 싶은 나’는 밀고 당기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기보다 불협화음이다. 못나고 지질하게 느껴지는 날이 목구멍 가시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향한 ‘나’의 냉담한 시선을 “그렇구나”라고 인정하고 ‘나’에게 좋은 경험의 기회를 준다.
삶의 지혜가 담긴 시집을 읽고, 심리와 관련한 책을 읽고, 인간 군상을 담아낸 영화를 보고, 음악의 선율에 몸을 맡기고, 미술 전시회도 다녀왔다. 관심을 기울여 그 작품들을 만나면서 마음이 짠하다. ‘나’를 향한 환멸 너머의 ‘고독’을 견뎌낸 분들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 두 번 다녀왔다.
전시가 시기별로 입산入山 (1947–1958), 수행修行 (1959–1968), 피안彼岸 (1969–1973)으로 전개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 수행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속을 떠나지 않고 세속에서 미술을 하며 수행한 작가의 치열함을 내 눈으로 만나고 싶었다.
대중적 몰이해로 좌절하면서도 수행하듯 작업에 임하며 살 수밖에 없는 절실함에 잠시 머물고 싶었다.
권진규 작가를 〈지원의 얼굴〉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는 여성두상, 여성상, 자소상, 부조를 비롯해서 불상, 탈, 가면, 기물, 잡상, 유화, 드로잉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옛날 이름 없는 장인들이 남긴 문화유산에 가치를 두고 눈에 보이는 사물 너머 존재하는 본질을 추구하며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썩지 않는 테라코타와 방부·방습·방충에 강한 건칠로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여러 형태로 영원성을 구현한 작가의 일상은 아침(6~8시), 오전(10~13시), 오후(15~18시), 밤(20~22시)으로 나뉘었다. 아침과 밤에는 구상과 드로잉, 오전과 오후에는 작품을 제작하는 규칙적 생활을 하고 작업장은 절의 마당처럼 깨끗했다고 한다.
대중적으로 인정을 받았든 받지 못했든 살아있는 동안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한 수행자의 태도를 안아드리고 싶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조용하면서도 있는 힘껏.
사랑하는 이와도 헤어지고, 전시는 무산되고,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해도, 끝없이 작품 활동에 몰입한 태도에 눈물이 맺힌다.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이 삶의 외로움과 자석처럼 붙어서 ‘고독’에서 도망치고 싶고 삶의 다른 부분과 만나서 내가 현실과 어떤 타협을 할 수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재미나게 살면 좋겠다는 욕망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런데 권진규 작가의 단순하면서도 몰입하게 하는 작품을 마주하며 그의 삶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외로움이 진한 고독에서 환멸까지 넘나들었을 텐데 수행자의 태도로 마음을 담아서 위로를 준다.
잘하든 못하든, 이런저런 괴로움에 붙잡혀서 뒤뚱거리든 말든, ‘나’를 알아가는 도구로써 글쓰기가 좋다.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 대한 매몰찬 시선을 거둬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