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텃밭 모임에서 심은 감자가 잘 자란다. 싹이 난 쪼글쪼글한 감자를 흙에 심고 물을 주었다. 심은 지 2달이 지나니까 수확이 기대될 만큼 무성하다.
도서관 텃밭에 들러 물을 준 사람들에게 고맙다. 그 손길 덕분에 물 주러 자주 들르지 못한 나도 감자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호사를 누린다. 감자뿐인가. 보리는 누렇게 익고 상추는 쌈으로 먹기 적당하게 자라고 부추보다 여리게 자란 쪽파도 있고 당귀와 땅콩도 잘 자라고 있다. 방울토마토와 고추가 열렸다. 한련화, 장미 등의 꽃도 있다. 나는 감자가 눈에 띈다. 감자 심던 날 흙도 뒤집어주고 씨앗을 심고 물을 뿌려주며 정성을 들여서인가보다.
잘 자라고 있는 감자
감자가 자라는 화분에 새끼손톱 길이로 짙은 회색의 벌레가 보인다. 이름도, 해로운지 이로운지도 모르지만 텃밭 모임에 참여하기 전처럼 ‘벌레’라며 놀라지 않았다. 감자밭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느껴진다. 무성하게 잘 자라는 감자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모임을 함께 하는 사람들도 처음 만났을 때보다 편안하다. 씨앗처럼 낯선 느낌이 사라지고 식물이 자라듯 생동감 있다.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목소리가 들린다.
흙을 만지면 마음도 나긋해지는 걸까. 내밀한 이야기가 오간다. 어린 시절 미술용품을 사달라고 학교에 안 가고 마당에 종일 앉아 있었는데 어머니가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단다. 학교 다니면서 단 한 번. 그렇게 결석해서 원하는 미술용품을 받지 못했단다. 그녀는 얼마 전 15만 원짜리 색연필을 사고 행복했단다. 40여 년 전에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지금 스스로 어루만진다.
나의 책 《겪고 선택하고 연습하며》를 읽으며 공감했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다. 과민한 대장과 다뇨로 생활에 불편감을 줬던 경험. 어디를 가든 화장실 위치부터 파악하는 우리들의 공통분모에 함께 웃는다. 눈물로 녹이며 내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던 부분이 있었는데 나의 책을 읽으면서 공감했다는 사람의 말에 찡하다. 말하지 못한 그 말들에 손잡아 주고 싶다. 책을 통해 내 말에 귀 기울여 준 사람에게 나도 마음을 열고 경청한다.
이야기를 나누며 흙이 물에 젖듯이 내 마음도 촉촉하다. 그냥 귀 기울여 듣는다. 풀을 뽑고 해바라기를 옮겨 심고 물을 준다.
흙을 만지다 보면 ‘다름’이 모여서 ‘조화’를 이룬다. 실하게 잘 자라는 식물도 있고 말라서 뿌리가 뽑히기도 한다. 같은 화분 속에 심은 감자도 다르게 자란다. 다르다고 화내지 않는다.
도서관 텃밭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각자 삶의 조건과 맥락이 다르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말을 경청한다.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텃밭에 물 주는 당번을 정하면서도 서로가 처한 상황에 따른다. 누가 몇 번을 더 하는지 덜 하는지 문제 삼지 않는다. 흙이 우리를 자연의 순리에 따르게 한다.
싹이 난 감자를 조각내서 흙에 묻었더니 여러 줄기의 잎이 무성하다. 감자가 잘 자란다. 낯선 사람이 모여서 서로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고받는다. 조그만 돌에 그림을 그리고 식물 이름을 적었다. 우리의 이름과 목소리가 낯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