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선물

명곡사

by 김작가

뜻밖의 선물을 받을 때가 있다.


바다를 보며 휴식하고 싶어서 가족들과 속초에 다녀왔다. 예전에 우리가 좋아했던 식당에 들러서 밥 먹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러 느긋하게 쉬는 3일의 여행. 해가 지는 등대 해수욕장의 잔잔한 파도 무심하게 바라보기. 지난겨울에 방문했을 때의 거친 바람과 파도는 온데간데없다. 가족들과 해변에 앉아 오랫동안 말없이 있어도 편안했다.


속초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춘천에 들렀다. 춘천에 가면 들르던 닭갈비집에서 식사하려고. 4년 만에 찾아간 식당은 여전히 맛있어서 기분 좋았다. 여행이 편안하고 느긋하다는 마음으로 걷다가 음반 가게가 눈에 띄었다. 뜻밖이다. 서점 한쪽 코너에 팬시 용품과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가게 하나가 음반으로 가득하다. “명곡사”라는 간판도 어린 시절 카세트테이프를 사러 들르던 가게를 오버랩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명곡사" 전경


자클린 뒤 프레의 음반이 앞 유리에 전시되어 있다. CD와 LP 뿐만 아니라 카세트테이프도 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빈틈없이 꽉 차 있는 음반들. 음반에 홀린 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세상의 모든 음악 20주년 기념 음반에 관심을 보이자 좋은 음악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고 가게 주인이 칭찬한다. 자클린 뒤 프레 사진이 눈에 띄었다니까 17장의 LP가 들어 있는 음반과 4장의 CD로 묶인 음반 등을 보여준다. 천재 첼리스트가 건강 문제로 연주할 수 없었던 이야기도 들려준다. 레너드 코헨의 <할렐루야>가 수록된 음반이 있는지 물었더니 CD를 찾아주며 음유시인의 매력을 칭찬한다. 자기는 시크릿가든의 <녹턴>을 좋아한다며 내게도 권한다. 아예 <녹턴>을 틀어주며 음악에 젖게 한다.



어렸을 때도 음반 가게에 가면 주인이 오디오로 틀어주곤 했다. 집에 있는 미니카세트보다 훨씬 좋은 음질로 노래를 들으며 무슨 테이프로 살지 고민하던 기억. 아스라이 추억을 오가며 음악에 빠져있는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3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BTS, 블랙핑크 등 몇몇 아이돌 가수 음반을 문의한다. 자신이 원하는 음반은 언제쯤 입고되는지도 확인한다.


내가 어떤 음반을 구매할지 망설이며 다른 음반을 구경하는 사이 초등학생은 BTS 음반을 현금으로 산다. 어떤 음반으로 살지 고민하는 나와는 다르게 야무지게 자기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구매해 가는 모습이 당차다.


나는 자클린 뒤 프레의 음반을 사기로 했다. CD 4장이 들어가 있어서 바흐, 하이든, 브람스, 베토벤, 헨델, 슈만, 드보르자크 등 여러 작곡가의 곡을 들을 수 있다. 에드워드 엘가의 <첼로 협주곡>도 포함되어 있다. 자클린이 묵직한 소리로 활을 움직였다는 “명곡사” 대표님의 설명이 첼로 소리를 좋아하는 나를 자극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들을 수도 있지만 오디오에 CD를 넣고 아날로그식으로 음악을 듣고 싶다. 천재 음악가로 일찍 두각을 나타내고 재능을 불사른 자클린의 연주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소망인지도 모른다.




비 내리는 날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 E단조 op.38을 듣는다. 자클린 뒤 프레의 첼로와 그녀의 남편 다니엘 바렌보임의 피아노 연주다. 모든 악장이 단조로 이루어져 있어서인지 조금 쓸쓸하면서 애잔하다. 비바람 소리가 배경 음악이 되어 더욱 중후하다.


자클린 뒤 프레와 다니엘 바렌보임이 결혼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던 1968년 녹음이라서일까. 첼로의 선율에 깊은 울림과 힘이 있다. 첼로와 피아노가 서로를 어루만지며 대화하는 느낌이다. 자클린 뒤 프레는 다발성 경화증으로 1973년에 마지막 연주하고 1975년 이후에는 척수신경 손상으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게 된다. 1987년 사망할 때까지 자신이 녹음한 음악을 들으며 지냈다고 한다.


에드워드 엘가가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편도선 제거 수술을 받은 1919년에 완성한 <첼로 협주곡>은 비통하고 절절하다. 엘가의 <첼로 협주곡>으로 전설이 되었던 그녀의 마지막 연주곡이기도 하다. 이 곡을 세상에 널리 알린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 삶의 희비와 닮은 느낌이다.


음악을 들으며 장마철을 보낸다. 뜻밖에 명곡사에서 음반을 사고 첼로의 선율에 취해있다. 자클린 뒤 프레뿐만 아니라 에드워드 엘가의 삶을 검색하기도 한다. 그들의 삶이 음악으로 표현되어 나에게 왔다. 장마철의 눅눅함을 첼로 선율로 풀어준다. 선물 같다.



* 자클린 뒤 프레와 에드워드 엘가에 대해 [네이버 지식백과 《명연주자 열전》], [두산백과 두피디아]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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