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있는 일

군대에 있는 조카를 면회하고

by 김작가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때가 있다. 원하지만 실천하기가 어려워서 미루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어도 장보고 재료 손질하고 요리하기가 싫어서 한 끼를 외식한다. 다음 끼니가 되면 냉장고에 먹을만한 음식이 없어서 부담스럽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생활하는 장소의 거리만큼 마음도 멀어진다.

멋진 여행을 하고 싶다면서 어디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경험하면 좋을지 추진하지 않으면 여행을 못 한다.


원한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간절히 원하고 최선을 다해도 결과물이 별 볼 일 없어 보일 때도 있다. 해보고 끝내 못하는 일과 시작도 안 하고 후회하기는 다르다.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이 숱한 선택의 과정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바로 일어날지 말지, 밥을 먹을지 말지, 책을 읽을지 말지, 집안일을 할지 말지, 가족들과 대화할지 말지, 친구를 만날지 말지, 운동할지 말지, 명상할지 말지, 사랑할지 말지, 감사할지 말지.




주말에 군대에 있는 조카를 면회했다. 작년 여름 조카의 입대를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 내가 군대에 면회 가겠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하고 싶거나 꼭 해야만 하는 일들 가운데 내가 조카를 위해 해주고 싶은 일이었다. 말은 나와의 약속이다. 군대에 간 조카를 면회하러 가는 일은 내가 했던 말을 실천하기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많아서 면회 가기가 조심스럽다며 미루다 보니 조카의 계급이 상병이 되었다. 군대에 방문하는 일을 더 미루지 않기로 했다.


보안서약서와 면회신청서를 쓰고 신분증을 제출했다. 차를 타고 방문증을 제시하자 조카의 소속을 다시 확인했다. 조카가 위병소 앞에 나온 후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조카가 환한 얼굴로 반겼다. 먼저 부대 안으로 들어가 있던 언니도 나의 방문을 기뻐했다.

내가 입 밖으로 꺼낸 말을 행동으로 옮긴 것뿐인데 언니와 조카가 기뻐해 줘서 고맙다. 집을 떠나 행동에 제약이 많은 군대에 살면서도 이모와 가족이 왔다고 환하게 웃는 조카가 듬직하다.

군대 안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는 없어도 조카와 함께 머물렀다. 조카와 함께 있는 다른 사람들도 무탈하게 잘 지내기를 소망한다.


한 공간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마음이 충만하다. 하려고 했던, 원하는 일을 마치고 기분 좋은 홀가분함이다. PX에서 화장품과 홍삼 등을 착한 가격에 구매하는 기쁨도 덤으로 얻었다.




“내가 원하면서 미루고 있는 일은 또 뭐가 있을까?”


내가 미뤄왔던 일은 어머니와 호캉스 여행 가기, 친구가 사는 호주 시드니에서 한 달 살기, 영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공부하기.


시드니에 가서 한 달을 살려는 이유는 친구와 좋은 시간을 보내며 행복하기 위해서다. 어머니와 호텔 여행 가고 싶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하면 좋은. 내 인생에 기쁨으로 물든 시간으로 채우고 싶은. 내가 원하는 행복.


호주에 정착한 친구가 보고 싶어서 내가 시드니에 가서 한 달 살면서 즐겁게 지내자고 말했는데 아직 실행하지 못했다. 영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숙제처럼 가지고 있다.

입으로 내뱉은 말은 나에게 빨리하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없어도 마음이 쓰인다.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의 일정상 나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서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친구도 만나고 관광도 하고 현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느껴 보려면 기본 회화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상에 영어가 밀렸다. 해야 한다는 생각과 일상의 핑곗거리 사이에서 내가 핑계를 선택한다. 몸이 피곤하다, 할 일이 있다…….


어머니와 2년 전 제주 여행 갔을 때 무척 좋아하셨다. 호텔에서 잠자고 아침 먹고 산책하며 행복하다고 하셨다. 행복한 시간을 위해 어머니가 지팡이 짚고 조금씩 걸을 수 있을 때 호텔에 모시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시골에 내려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움직여야 하는데 피치 못할 사정은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하려고 해도 안 되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을 꺼내놓고 시도하지 않으면 후회가 남는다. 어머니와 호캉스 가거나 친구를 만나러 시드니에 가는 일이 미뤄지고 있어서 숙제 같다. 몸과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뱉은 말이 무겁게 느껴지는 걸 보니 시작해야 할 때인가 보다. 행복은 미룰 일이 아니다. 매일매일 부딪치고 인정하고 화해하며 움직인다. 행복은 기꺼이 움직이고 경험하기다. 일상의 핑곗거리는 많고 나는 선택의 갈림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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