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산소 앞으로 길이 났다. 잘하면 차 한 대가 빠듯하게 지날 수도 있겠다 싶은 넓이의 완만한 길이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
작년에는 혼자 좁고 가파른 산길을 걸어서 산소에 갔다. 등허리를 구부리고 거미줄을 피하다가 어디선가 들리는 낯선 소리에 놀라서 왔던 길을 돌아보기도 했다. 금방이라도 뭔가 튀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숨을 고르고 주변을 몇 번이나 두리번거리다 다시 걸었다. 밤송이가 많이 떨어진 길. 운동화라도 준비했으면 편안할 텐데 하는 아쉬움의 길이었다.
혼자 산에 있다는 두려움, 산소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혼자 대면한다는 부담감.
산은 더 가파르게 느껴지고 호흡은 거칠어졌다.
숨을 몰아쉬다 발견한 뱀.
온몸의 털이 곤두서며 비명도 크게 지르지 못하던 나. 움직이지 않고 혀만 날름거리는 뱀을 바라보며 내가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이런 두려움이었구나 싶었다. 아버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뱀을 보는 공포와 비슷했다.
뱀이 사라지고 아버지 산소 앞에 가서도 잔디와 낙엽 사이로 기어가는 뭔가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서 두리번거렸다.
아버지 산소에 가다가 뱀을 만난 이후 1년 동안 가지 않았다. 먼 길 떠나신 아버지를 내 일상으로 끌어오기보다 나는 나대로의 일상으로 지내려고 했다. 아버지 살아있는 동안 풀어내지 못한 감정이 올라오면 혼자서 대면했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여기며.
그러다,
아버지 산소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앞둔 언니와 대화하다 아버지가 떠올라서다.
먼 길 떠난 아버지를 처음 발견했던 언니의 암. 생과 사의 그림자가 밝음으로 채워져서 언니가 순탄하게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 떠나신 아버지가 그곳에서 평안하시기를 바라는 마음.
아버지의 죽음을 다시 기억하고 언니의 건강 회복을 현실에서 새기고 싶은 마음이 산소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일으킨 것 같다.
산소 가는 길이 생겼다. 산 주인이 포클레인 등의 장비를 동원해서 아버지 산소 부근을 통과하는 길을 냈다. 아버지의 산소를 지나 납골묘를 만들었단다.
4일 전 언니가 수술을 받았다. 염려했던 전이는 없어 보이고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한다.
나는 완만한 흙길을 걸어서 아버지 산소에 간다. 작년에는 대상포진으로 함께 가지 못한 남편도 동행한다. 얼마 전 태풍 힌남노로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길 여기저기가 패인 곳이 있다. 아버지 산소는 작년보다 잔디가 없어지고 흙이 드러났다. 멧돼지가 자주 출몰한다더니 여기저기 구멍이 보인다.
산소에서 아버지 살아생전 좋아하던 소주 한잔을 따라서 올린다.
“아버지, 언니 지켜주세요. 아버지 먼 길 떠나시고 제일 먼저 아버지 배웅한 언니에요. 아버지 그곳에서 편안히 지내세요. 그곳에서는 부디 불편한 마음으로 괴로워하지 마시고 편안히 지내세요. 이생에서 풀지 못한 마음 있더라도 우리 다 용서하기로 해요.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좀 더 잘하지 못했던 거 이제 다 용서하기로 해요.”
내 눈물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던 남편이 내려가자고 손을 내민다. 살아서 아버지 만날 때도 주눅 들었는데 작년에 혼자 산소에 오를 때는 뱀을 만나서 또 한 번 깜짝 놀랐었다. 이번에는 작년보다 산소에서 아버지한테 말을 많이 한다. 눈물이 서럽기만 하지 않다. 뭉클하다.
완만한 산길이 아버지 만나러 가는 길에 놓여있다. 눈물을 닦고 남편과 천천히 흙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