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선물을 받고

행복하다

by 김작가


책 출판은 통과의례다.


내가 책을 내겠다고 결심한 날이 아버지 49재 날이다. 먼 길 떠난 아버지와 이별하려고 무진 애쓰던 49재 기간의 마지막 날. 아버지 살아생전 한 번도 사드리지 않은 소주 한 병을 샀다. 소주 드시는 게 싫었어도 그토록 술을 찾는 아버지에게 한 번은 사드렸어도 됐을 텐데. 뒤늦게 소주 한 잔 따라두고 오랫동안 바라봤다. 그러다가 그동안 쓴 글을 책으로 내기로 다짐했다.


책을 내겠다는 마음을 취소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출판사에 마지막 교정본을 넘길 때도 밤새 잠을 못 잤다. 한 문장을 그대로 둘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대로 두자니 내 마음이 괴로울 것 같았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는 용기를 내서 그 문장을 빼면서 울었다.


글이 기억과 감정을 오가며 눈물로 녹이던 시간. 쓴 글의 사실 여부를 다시 확인하며 또 다른 진실과 마주하던 시간. 이별의 고통을 비교하고 판단하지 않고 고스란히 끌어안던 시간. 눌렸던 감정이 폭발하며 울고 또 울어야 했던 시간. 자책의 화살을 버리던 시간. 책 출판은 그 시간을 통과하는 의식이었다.


살다 보면 전환점을 만난다.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이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변화하고 있던 일이 의식을 거치면서 선명해진다. 책 출판이 그랬다. 책을 출판하기 전과 후의 내 태도가 다르다. 상처라고 여겼던 일들의 사실을 ‘그렇구나’ 인정할 뿐 확대하고 재해석하면서 나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지 않는다. 가장 좋은 일은 주변의 친절과 사랑을 받아들이기다. 나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줘서 감사하다.


예전에는 몰랐다. 누군가의 친절과 사랑을 받아들일 때 행복하다는 것을. 내가 감사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나누는 일이 얼마나 충만한지를.


책을 출판하고 고맙다는 말을 듣곤 한다. 나의 글에 위로받았다거나 울었다는 말을 들으면 그분들 가슴의 응어리가 느껴져서 안아주고 싶다. 살아내기를 연대하는 느낌이다. 내 책을 읽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글을 읽어준 그들에게 감사하다. 그들의 일상이 평안하기를 기원한다.


한 독자가 몇 사람을 거쳐서 나의 사인을 받고 싶다며 책을 보냈다. 밑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며 꼼꼼히 읽은 독자의 손길이 묻은 책. 내 글이 누군가와 연결되어 소통한 흔적. 독자가 나를 향해 보내는 따뜻한 기원의 메시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존재로 빛나소서.”


책을 펼치면서 내 눈이 그렁그렁하다. 한 독자가 두 사람의 손을 거쳐 나에게 보내는 따뜻함에 감사하다. 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줘서 감사하고 나에게 보내는 응원에 감사하고 나의 글이 누군가와 연결되었다는 증거를 확인시켜줘서 감사하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충만함. 그동안 겪고, 선택하고, 연습하느라 애썼다고 토닥여주는 듯하다. 독자는 나를 위해 책도 한 권 선물했다.


독자가 읽고 사인해달라고 보낸 나의 책과,

독자가 나에게 선물한 책과,

독자가 메시지를 적은 카드를 어루만지며 행복하다.



막상 책으로 내려니 도망치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꿈속에서 많은 사람과 만나듯이
내가 글로 세상과 연결될 거라는 희망도 생긴다.
이 세상을 살면서 몸과 마음이 아프거나,
자신이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을 찾고 있는 사람들과
글로 따뜻하게 만나기를 바란다.
바람만으로 가슴에 차오르는 온기가 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평안하면 좋겠다.
《겪고, 선택하고, 연습하며》 중에서


《겪고, 선택하고, 연습하며》


독자가 밑줄 그은 부분이다. 바람만으로도 온기가 느껴지던 일이 현재의 순간에 이루어진다. 내가 책을 내겠다고 결정하고도 숱하게 도망치고 싶던 순간들을 지나며 마음을 모아 책을 냈다. 통과의례를 거치고 나니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나에게 선물이 온다. 사랑받는 느낌, 내가 사랑 속에 존재하는 느낌. 좋은 순간으로 물드는 행복감.


행복을 선택할 줄 모르면 불행하다는 배움의 장을 나에게 펼쳐준 아버지에게 감사하다. 기꺼이 겪고 선택하고 연습하기를 배우기까지의 그 모든 시간을 견뎌낸 나와, 내가 버틸 수 있도록 도와준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독자에게 메시지를 쓴다.


기꺼이 배우는 일상으로

기꺼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용기로

아름답게 물드는 나날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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