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아침
“오늘 주유해야지?”
“응, 하는 게 좋겠어”
“내가 ㅇㅇ카드 챙겼어.”
“**카드 챙겼다고?”
잠시 침묵.
내가 한 말이 뭔가 이상하다. 예전에 사용하다가 없앤 ㅇㅇ카드와 지금 주유할 때 쓰는 **카드는 색깔만 비슷하다. 남편을 버스 타는 곳에 데려다주다 둘이 소리 내어 웃는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네.”
남편을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주고 주유소에 들르려고 신용카드를 챙겼다. 그런데 내 입에서 나온 이름은 지금은 집에 있지도 않은 ㅇㅇ카드. 남편은 나의 잦은 말실수에 익숙해졌는지 이런 정도는 일도 아니라는 듯 바로 알아듣는다
.
분명히 머릿속으로 생각한 단어가 있는데 입으로 말할 때는 엉뚱한 말을 하기도 한다. 주말에 요리하다가 대파를 냉장고에서 꺼내 달라고 했는데 양파를 꺼내오는 남편에게 이게 뭐야 하는 눈빛을 보내면 내가 ‘양파’를 달라고 했단다. 다용도실에 있는 물건을 욕실에서 찾게 할 때도 있다.
건망증이 곧 치매는 아니다. 건망증은 기억에만 사소한 장애가 있는 것이다. 치매는 사고력과 판단력에 문제가 생기고 성격도 변하는데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건망증은 약간의 힌트에 기억력이 돌아오고 치매는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나의 증상을 집중력 저하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건망증’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는다. 마음이 바쁘거나 할 일이 많을 때 나의 머릿속 단어와 입으로 하는 단어가 일치하지 않았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굳이 이름 붙여서 불안해하기보다 웃고 넘기면 되지 않을까.
내가 너무 낙관하나.
말하고 나서 엉뚱한 단어를 곧바로 수정할 때도 있고 남편의 힌트와 표정으로 나의 말실수를 알아차리기도 한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냉장고에 넣은 적도 없다. 다만 분주하다 싶을 때 한 번씩 말이 꼬인다.
남편의 출근을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하는 날은 바쁘다. 아침 식사도 챙기고 나의 외출도 준비한다. 남편을 버스 정류장에 내려주고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해야 하는 집안일에 밀려서 내가 집중하고 싶은 대상에 마음을 모으기가 어렵다. 아침 일찍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며 책 읽는 나의 모습은 한가하다. 집을 나서기 전 분주했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다.
내가 종종 개떡 같이 말해도 남편이 찰떡같이 이해해서.
내가 말실수할 때마다 남편이 화내거나 인상 쓰면 기죽었을 거다. 전자기기 사용이 늘어서 나의 뇌가 전두엽의 신경회로가 줄어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거라고 하소연하지 않아도 받아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부부로 살아가면서 싸울 때도 있었고 서운할 때도 있었다. ‘왜 저러지?’ 하며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25년을 고달프면 고달픈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함께 고개를 넘다 보니 연대감이 생긴다. 나의 부족한 부분과 남편의 아쉬운 부분을 ‘그러려니’ 하게 된다.
개떡 같이 하려던 말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단어를 틀리게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든든한 아침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쑥을 넣어 만드는 개떡을 둘 다 좋아한다. 맛있는 개떡 파는 곳 없나. 개떡도 맛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