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치유하는 나무

소나무

by 김작가

소나무에 상처가 나면 송진이 생긴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투명한 액체가 나오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희뿌옇고 끈적하게 변한다. 송진은 테레빈유나 페인트의 원료로 쓰기도 하고 접착제나 향료를 만드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소나무의 잎은 소화불량이나 강장제로, 꽃은 이질에, 송진은 고약의 원료로, 화분은 송홧가루로 다식을 만들고, 껍질은 송기떡을 만들어 식용한다고 한다.


숲에서 만난 소나무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 줄기로 자라던 나무가 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한쪽 나무에 기대고 있다. 기대고 있는 가지는 한쪽 나뭇가지가 둘로 갈라진 곳에 자신의 몸을 얹은 모습이다. 잘린 곳이 많고 2개씩 뭉쳐나는 바늘잎도 없다. 어깨를 듬직하게 내준 소나무의 한쪽은 바늘잎이 잘 자라고 있고 한쪽은 시름시름하다. 하나의 소나무가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숲에서 만난 비스듬한 소나무

누군가 내 어깨에 기대면 힘이 빠질 수도 있을 텐데 비스듬하게 잘 자라는 나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쩌면 잘린 흔적이 많은 가지가 비스듬한 나무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나 싶다. 가지 사이에 듬직하게 기대어 반대쪽으로 뻗어나간 줄기가 있어서 한쪽으로 기울다가 쓰러지지 않도록 돕는지도 모른다.


소나무는 상처 난 자리를 송진으로 치유한다.

소나무는 건조하거나 지력이 낮은 곳에서 견디는 힘이 강하다.


고만고만한 환경에서는 사람의 본성을 알기가 어렵다. 극한 환경에서 자기가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위험한 상황이 되면 어떻게 대처할지 예상해 보더라도 막상 재난 상황에 부딪히면 내가 어떤 모습이 될지 알 수 없다.




신혼 때의 일이다.

주말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중에 이상한 냄새가 났다. 뭔가 타는 냄새. 이웃의 어느 집에서 음식을 심하게 태우나 했다. 그런데 사이렌 소리가 나고 밖에서 확성기 소리가 났다. 발코니로 나가보니 연기가 자욱했다. 그리고 ‘대피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남편은 입은 옷 그대로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복도에 연기가 가득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는데 6층에서 뛰어내리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포가 엄습해서인지 발걸음이 더뎠다. 연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 아득하게 느껴질 때 소방대원을 만났고 그분들의 안내를 받으며 계단을 걸어서 건물 밖으로 나갔다.


소방차들이 더 도착하고 구급차와 경찰차도 사이렌을 울리며 더 도착했다. 4층에서 불이 났다는 말이 들렸다. 사람들 무리에 섞여서 연기가 사라지고 4층과 5층 베란다 새시가 검게 그을린 흔적을 지켜보며 6층 복도에서 뛰어내리면 살 수 있을까 생각했던 일이 지나친 오버라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서 나올 때 뭔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엇을 들고 나와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나와 떨고 있는 내가 웃기기도 했다. 집에 들어가도 안전하다는 소방대원과 경찰의 설명을 들을 때까지 밖에 서 있으면서 이런 사고에 대비해서 앞으로는 가방 하나에 꼭 챙겨야 할 물건이나 서류를 담아놔야겠다고 생각했다.


화재 사고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가방을 챙기지 않았다. 비상시에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지 못해서다. 화재가 발생하면 물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빨리 움직이겠다는 다짐만 한다.


지력이 좋고 토양습도가 알맞은 곳에서는 낙엽활엽수종에게 밀려나곤 하는 소나무는 극한 환경에서 스스로를 치유하며 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한다.


소나무에게 좋은 환경에서 더 잘 경쟁하고 승리하지 뭐하러 극한 환경으로 밀려나냐고 말할 수 없다. 상황을 파악하고 자리를 양보해야 할지 상처를 치유해야 할지 아는 소나무의 위기 대응 능력 앞에서 화재 사고 이후 아직까지 가방을 챙기지 않은 내가 부끄럽다. 숲에서 소나무가 끈적거린다고 송진을 마땅치 않아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미안하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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