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다.
불편한 일에서도 좋은 일에서도 나만 특별하지 않음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살아있음을 자각하기 위해 글을 쓴다. 기운이 없어서 앉아 있기도 어질어질한 상황에서 나는 노트북을 연다.
이렇게 몸이 힘든 날에도 쓰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코로나에 확진되고 한동안 심하게 앓았고 격리기간이 끝나고도 온몸의 소진된 기운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전염병이 나만 피해 가지는 않았다. 살면서 나는 겪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 중에 완전하게 피해 가는 기적은 없다.
나만 특별하게 겪고 싶은 일도 삶에서 그렇게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사랑할 때 사랑인 줄 모르고 지나치고 나서야 뒤늦게 자각하는 경우가 있다.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격렬하고 로맨틱한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그런 사랑을 대리만족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로맨틱한 사랑을 잠시 경험해서 추억이 남았을 테고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서도 그런 사랑을 꿈꾸기에 사랑 이야기는 고대로부터 셰익스피어를 거쳐 현대에도 자주 창작되는 대상이다.
삶이 수행이고 글쓰기와 명상은 일상을 살아내는 좋은 도구다. 어떤 날은 혼자 집에 있으면서도 세상만사와 연결되어 충만하고 어떤 날은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외로움의 깊은 골짜기에 떨어진다. 골짜기를 헤치고 기어오르며 만나는 일상의 소소한 기쁨은 나를 감사로 물들인다.
외로움은 내 인생의 화두다.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고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외로움’이라고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지나가 주기도 하지만 목구멍에 끈적하게 들러붙은 가래처럼 뱉어지지도 삼켜지지도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이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질문하고 답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솔직히 힘들다. 인생이 고달프다는 망상이 밀려들기도 한다.
명상하며 망상에 빠져있는 ‘나’를 들여다보고 글을 쓰면서 정말 내 인생만 고달픈지, 나만 외로움을 느끼는지, 나만 긴장하며 사는지, 나만 알아주는 이가 없는지, 나만 세상에서 단절되어 살고 있는지, 나만 몸이 약한지, 나만 어려운 일 겪었는지, 나만 양보하며 살았는지, 나만 배려를 못 받았는지, 나만 충분한 사랑을 못 받았는지, 나만 온몸을 태워서 사랑을 퍼주었는지, 나만 가진 게 별로 없는지, 나만 수행자의 태도로 살고 있는지, 나만 하루를 잘 지내려 의도를 내고 살고 있는지, 나만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려 노력하는지 살펴보면 정답은 “아니다”이다.
내가 그 순간에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경험과 연결되는지에 따라서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불안으로 끌고 가기도 하고 지금 여기에 온전히 머물러서 이유 없이 감사하고 행복하기도 하다. 감정은 극과 극만 있지 않고 사방으로 확장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나만’이라는 꼬리표를 내려놓는다. 나에게 이런 마음이 있으면 상대방도 그러하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내가 사랑받고 싶듯이 다른 이들도 사랑받기를 원하고, 내가 좋은 순간으로 물들고 싶듯이 다른 이들도 그러하다고 인정하게 된다.
글을 씀으로써 사실을 사실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경험은 내가 배우는 수행자로서 살고 있다는 진실도 만나게 한다. 완벽한 경지에 이른 깨달은 자가 아니라 지지고 볶는 일상에서 배우고 깨닫고 다시 배우고 깨달으며 걸어가는 ‘나’를 본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몸의 기운이 흐트러지면서 마음도 부대꼈다. 격리기간 7일을 지나고도 몸은 쉽게 회복의 기미를 주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별로 없고, 잠자다 힘들어서 약을 먹기도 한다. 시간이 멈추고 나만 고립된 듯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가을을 무척 바쁘게 지냈다.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준비하고 연습하느라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그동안 하던 일은 미룰 수도 있었지만 ‘수행이다’라는 마음으로 하던 일은 그대로 다 진행했다.
그동안 해오던 일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감당하느라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하는 시간이 무척 길었고 몸을 위한 산책 시간은 줄었다. 해야 할 일에 신경 쓰느라 편안하고 여유로운 시간이 별로 없었다.
해야 할 일이 마무리되고 겨울이 되어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코로나에 확진되어 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약속은 취소되고 나는 ‘혼자’의 시간을 보낸다. 뭔가 해야 할 일에 매달리다 찾아오는 무력감과 몸의 불편함이 만나서 외로움의 골짜기로 깊이 끌려 내려갔다.
가을 내내 몸을 챙기지 못했는데 겨울이 되어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려는 나의 계획은 무리한 욕심이었는지 모른다. 쉬는 시간이 필요해서 몸의 질병이 찾아왔구나 싶다. 쉼을 통해 몸을 충전하고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으로 물들라고 우주가 나에게 멈춤의 시간을 갖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멈춤의 시간이 낯설고 외로웠다.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불안했다. 글을 쓰면서 마음이 정리된다. ‘나만’ 외롭고 힘들다는 착각이 사라지고 ‘나에게’ 무리했던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 것에 감사하다. 지금 내 몸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쉬면서 충전하는 시간은 나와 내 주변의 인연을 여유로 물들이고 있다. 글을 쓰며 쉬어도 안전하다는 깨달음으로 편안하다.
나는 몸과 마음을 자세히 관찰하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내려놓느라 오늘도 글을 쓴다. 이제 어질어질한 몸으로 글 쓰느라 수고한 나에게 여유로 가득한 쉼을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