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의 시간

편지를 띄우다_눈 내리는 날의 편지

by 김작가


눈 내리는 날은 풍경 사진 같아. 초가지붕에 눈이 켜켜이 쌓이고 강아지 한 마리 있는 어렸을 때 달력에 있던 사진. 고요히 멈춘 시간.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날 하늘에서 하얀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어. 나뭇가지에도 눈이 쌓이고 사람이 지나가지 않은 길은 백설기를 깔아놓은 듯해. 언덕길에서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있어. 어른들은 우산을 쓰고 아이를 지켜보기도 하고 썰매를 끌어주기도 해. 자기 허리춤까지 오는 눈을 굴리는 아이도 있어. 무거운지 아이가 온몸으로 밀고 있어. 다른 아이도 그만한 눈을 굴리는 것을 보니 커다란 눈사람을 만드나 봐. 눈 뭉치가 너무 커서 눈사람 만들려면 힘센 장정이 세 명은 있어야겠어.


자세히 바라보면 움직이는 사람과 자동차가 있는데 눈 내리는 창밖을 볼 때마다 정지화면 같아. 하얗게 덮어주는 눈이 리셋의 시간인가 싶어.




나는 며칠 전에 코로나에 확진되어 자가 격리 중이야. 피하고 싶었지만 나도 겪고 넘어가야 할 일인가 봐.

몸은 어떠냐고?


아파.


아파서 아프다는 말도 하기 싫을 만큼 아파. 증상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목이 다 헐어서 의사 선생님이 ‘진짜 아프겠네요’라고 했어. 말을 하면 기침이 더 나고 그러면 목이 더 아프니까 말을 자중하게 돼.


내가 호흡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중요하다고 자주 말하는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또 실감하고 있어. 편도염, 인두염, 인후염에 헐기까지 한 나의 목은 가만히 누워있어도 통증이 심해.

통증이 느껴지면 내 몸이 긴장을 해. 그렇구나 알아차리며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다 보면 내 몸이 부드러워져. 바싹 마르거나 꽉 막혔던 콧속의 불편함이 좀 편안해지면서 목의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도 부드러운 호흡을 통해 이완돼. 배가 아프다가 고관절 부위가 아프다가 발이 깨져나가는 것 같고 이가 시려서 절반쯤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 때도 호흡에 주의 모으고 있어. 숨만 잘 쉬어도 통증이 경감되는 효과를 경험하고 있어.

약 안 먹고 호흡에만 의지하고 있냐고?

아니.

잠을 자다가도 너무 아파서 약을 먹고 호흡에 주의 기울이다 다시 잠이 들고 있어. 몸에 병이 났고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지만 통증은 상당히 심해. 다만 그런 나를 위해 호흡에 주의 기울이는 거야. 겪어야 하는 일인데 싫다고 인상 찡그려봐야 소용없잖아. 내가 코로나를 잘 겪을 수 있도록 도우려고 노력 중이야. 내 몸이 힘든 일 겪고 있는데 확실하게 편들어줘야지. 나한테 친절한 내 편.




창문 밖이 온통 하얀 눈의 세상이야.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에도 눈이 쌓였어. 떠나보낸 이파리며 열매에 아쉬워하지 말라고, 다 떠나고 혼자 남아 쓸쓸하지 말라고 눈이 내리나 봐. 해소하지 못한 분노나 절망을 녹이라고 눈으로 덮어주나 봐. 기쁨과 감사를 새겨두라고 차가운 눈이 한기를 몰고 왔나 봐.


겨울은 멈춤의 시간이야.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고 농부도 쉬고 땅도 쉬는 시간이야. 계속 열심히만 살 수는 없어. 그러면 주변이 보이지 않아. 주변은 돌아보지 않고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갈 수도 있겠지.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 그 목표라고 할 수도 있겠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목표보다 나의 태도가 더 중요하게 느껴져. 나 스스로와 그리고 나의 주변과 내가 어떤 태도로 있는지에 따라서 행복하고 감사해. 하고 싶은 대상, 목표라고 할 만한 일에 도달했을 때 행복해지기보다 헛헛해. 목표에 도달하고 행복감이 찰나로 나타났다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열심히 죽을 둥 살 둥 버텨내느라 고달팠던 무게가 얹어지더라고.


겨울은 멈춰서 충분히 쉬면서 엇박자 난 속도를 조율하는 시간이야. 내 몸과 마음이 어떤지 살펴보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들여다보고 후회되는 일이 있으면 지금부터 후회하지 않으면서 살 방안을 마련하는 시간.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할 일이 있으면 늦지 않도록 마음을 여는 시간이기도 해.


눈 내리는 오늘이 정적인 풍경 사진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리셋의 시간이기 때문인가 봐.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채 몸도 쉬고 마음도 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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