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마늘 까고
내가 불편하다고 여기던 일이 때로는 스승의 역할을 한다.
나는 쉽게 지치는 몸이라 해야 하는 일과 피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한다. 아이를 조산하고 십 년이 넘도록 밥할 때 육수를 내던 나의 지금 일상은 먹고사는 부분을 쉽게 하려고 노력한다. 슈퍼마켓에 가면 요리하기 편하게 손질된 상품을 많이 판매하고 있어서 감사하다. 언제라도 깐 마늘을 살 수 있다.
손이 많이 안 가면서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음식은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간소하게 먹고살자고 다짐하면서도 걸핏하면 요리하다가 지치기도 하고 한동안 대충 해서 먹다가 나와 내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럴 때 밀키트를 이용한다. 누군가의 수고 덕분에 내가 편하게 산다.
씨마늘을 얻었다.
파종하고 남았다며 눈으로 언뜻 보기에도 알이 굵은 마늘을 나눔 받았다. 나는 요즘 깐 마늘을 사 먹는다. 마늘 한 접을 까다가 몹시 피곤하고 지치던 경험 이후에는 깐 마늘이 비싸다는 말 안 하고 기꺼이 지갑을 연다. 종종 할머니들이 마늘을 까서 팔면 ‘이거 웬 횡재냐’라는 마음으로 기쁘게 산다. 지하철을 환승하다 더덕 냄새가 나서 두리번거려보니 할머니가 더덕을 까고 있어서 산 적도 있다.
요즘은 지하철 환승하다 더덕을 까거나 지하철 역사 밖으로 나오는 계단에서 깐 마늘을 팔던 분들을 못 본다. 아무 데서나 물건을 팔면 안 된다는 학습이 이루어져서인가 보다. 내가 서울에서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어서 지하철 탈 일이 별로 없어서 못 보는지도 모른다.
사람들 지나다니기도 힘든 복잡한 곳에서 마늘이나 더덕을 까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통행이 불편하다는 사실은 엄중하다. 그래도 나는 막 까서 파는 마늘이나 더덕이 아쉽다. 막 까서 판매하는 마늘이나 더덕 특유의 향과 맛이 그립다.
나는 더덕이나 마늘 껍질을 벗기기가 고단하게 느껴진다. 직접 까서 요리하기는 피하려고 한다. 그런 수고를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능숙하게 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다. 내 몸 편히 지내자고 너무 쉽게 살려는 태도인가 싶어서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마늘이나 더덕을 까다가 힘들어서 화내기보다는 웃으면서 밥 먹는 일상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내 몸에 맞춰 사는 방법으로 손질된 물건을 선택한다.
오랜만에 까지 않은 마늘을, 그것도 귀한 씨마늘을 얻었다. 김치냉장고에 보관하고 혹시나 상할까 걱정하며 2주가 지났다. 오늘은 기필코 마늘을 까기로 한다.
씨마늘은 크기와 모양이 일정하다. 예전에 마늘 한 접 샀을 때 마늘 한 톨에서도 내 새끼손톱 절반 크기부터 모양이 제각각이던데 씨마늘은 누군가 튼실한 것으로 골라낸 모양이다. 씨로 심을 거라 한 해의 마늘 농사를 생각하며 정성을 들인 흔적이 느껴진다.
마늘 까기가 힘들까 봐 마음을 다잡고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까진다. 씨마늘이라 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늘 하나 깔 때마다 어루만진다. 의미를 부여하니까 마늘을 까는 단순한 행동이 가치 있게 느껴진다.
예전에 내가 마늘을 까면서 힘들어하고 지치던 모습을 오늘은 찾아볼 수 없다. 지인의 부모님이 시골에서 마늘 파종하고 남은 씨마늘이라 양이 많지 않다. 씨마늘로 쓰일지 말지 골라내는 과정에서 손질이 되었고 크기가 커서 수월하게 까진다. 냉장고에 2주나 더 보관했었는데도 마른 마늘이 하나도 없고 상하지 않았다.
마늘을 까고 마음이 홀가분하다. 귀한 걸 상하지 않게 처리해서 흐뭇하다.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다르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내가 초점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서 나의 삶도 달라진다. 나의 주의가 마늘에 머물러 있어도 스승이 다가온다. 마늘 농사를 짓고 씨마늘을 골라내고 땅에 파종하고 다시 수확하며 세상으로 퍼져나가 순환한다. 마늘 까기가 피곤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내가 누군가의 정성이 깃든 씨마늘 까기가 수월하다는 사실을 만났다. 한 번에 한 접 까기는 힘들어도 조금씩 마늘 까기는 괜찮다는 사실을 만났다. 마늘 까기는 내가 피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시간과 양을 조절하면 되겠다. 마늘을 까는 일상의 단순한 행동이 마음도 편안하게 한다. 내가 일상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 같다.
마늘을 까고 뒷정리한 후에 냉장고를 청소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계피, 파슬리, 겨자소스를 치운다. 매실액이 들어있는 통이 끈적거리지 않도록 낡은 양말을 씌운다. 행주로 냉장고 안을 닦는다. 과일이 넉넉하게 있는지 확인한다. 그저께 사 온 쪽파 잎이 조금 누렇게 되어 있다. 깐 마늘을 넣어서 불고기를 해서 먹어도 좋겠다. 저민 마늘을 넣어서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해 먹어야 할까?
잠깐!
마늘을 까고 편안한 마음으로 냉장고를 기웃거리다 내 몸 상태는 확인하지 않고 해야 할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심호흡하고 쪽파를 다시 냉장고에 넣어둔다. 오늘은 마늘을 깠으니 쪽파는 내일 다듬자. 불고기든 파스타든 잠깐 쉬었다 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