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어떻고 잊어버렸으면 어때!
적절한 중국어 방학이었다. 쉬고 나서 공부를 다시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중국어를 배우는 뚜렷한 목적이 무엇인지 발견하지 못하고 헤맸다. 외국어를 배우는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중국어를 시작하고 1년이 지나면서 불평하는 말이 자꾸 늘어갈 때 학원 스케줄 문제로 한 달 동안 방학을 했다. 내가 코로나에 확진된 이후 몸이 잘 회복되지 않아서 힘들 때 방학을 했다.
한 달 동안의 중국어 방학은 “내가 왜 중국어를 배우는지 모르겠어, 너무 어려워, 재미없어, 하기 싫어.”라고 불평하던 태도를 멈출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방학 기간에 가끔 중국어 교재를 들춰 보았다. 문법은 여전히 어렵고 발음은 잘 안 되고 단어는 기억이 안 나서 사전 검색하는 데 알 듯 모를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병음이 표기되지 않은 단어를 기억을 더듬어 발음해 보기도 하고 회화, 문장연습을 읽으며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했다. 교재의 녹음 파일을 반복해서 들으면 귀에 익숙한 단어가 들리고 무슨 말인지 유추할 수도 있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들어도 모를 때는 해설을 찾아 읽고 다시 듣기도 했다.
중국어 방학은 나에게 모르면 어떻고 잊어버렸으면 어때하는 여유를 줬다. 코로나 확진 이후 기운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중국어 공부에 대한 부담 없이 한가한 시간이 좋았다. 덕분에 딸과 함께 미술관 나들이도 하고 편안하게 책도 읽었다.
한 달 동안의 중국어 방학은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고 있다는 억지스러운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내가 ‘언젠가는 배울 거야’ 하고 벼르던 외국어를 시작하는 설렘을 잊어버리고 불평하고 있는 상황에 헛웃음이 났다. 아무도 나에게 중국어 성적을 요구하지 않는데 조금 해보고 잘 안된다며 떼쓰는 모습이 웃겼다.
중국어 문법이 왜 이리 어려울까 하는 생각으로 고등학생의 한국어 문법 강의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무슨 말이지?’ 싶었다. 중국어에 나오는 양사, 정도 보어 등의 용어만 어색한 것이 아니라 한국어의 ‘ㄴ’ 첨가, 비음화, 유음화, 조음방법동화 등의 용어도 낯설었다.
한국어 문법도 어색한데 평소에 말 한마디 할 일이 없는 중국의 문법을 받아들이기는 더 고된 일 아닌가?
문법뿐만 아니라 단어를 외우고 잊어버리는 현상도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방학이 끝나고 다시 수업을 시작했을 때 낯선 문법적 표현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내려놓고 '중국인들의 언어는 그렇구나'라고 받아들였다. 한국어 문법에도 예외가 있듯이 중국어 문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몇 달 동안 나를 짓누르던 중국어 공부에 대한 불평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한국어 문법은 어려서부터 문법이라는 딱딱한 표현을 빌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주변의 자극을 받아서 숙지했다. 이론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모국어는 주변의 자극으로 다양한 어휘를 편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내가 중국어를 배우는 과정은 어휘와 익숙해지기도 어렵고 문법은 딱딱하고 예외상황은 복잡해서 도망치고 싶고 '왜?'라는 의문과 저항감도 있다. 외국어와 익숙해지는 중이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가 자기의 현실에 한숨을 쉬며 중국어 공부에 현타가 왔단다. 문장을 읽는 녹음 숙제를 아무리 여러 차례 다시 해봐도 자꾸 틀리는 부분이 있어서 화가 나기도 한단다.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단다.
친구의 모습이 얼마 전 나와 닮았다. 문장을 읽는 녹음 숙제할 때 발음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이유는 그동안 공부한 덕분인데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첫돌이 지난 아기가 ‘맘마’, ‘엄마’, ‘아빠’ 같은 단순한 표현만 해도 웃음이 난다. 아기에게 문장으로 말하지 못한다고 화내지 않듯이 중국어 공부에도 여유가 필요하다. ‘지하철역에 어떻게 가나요?(去地铁站怎么走?)’, ‘사거리에 도착해서 좌회전해요(到十字路口往左拐。)’라는 말을 우리는 듣고 이해할 수 있다. 중국어 선생님이 약간의 힌트를 주면 간단한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우리를 다그치지 않아도 괜찮다.
중국어 방학으로 한 달을 쉬면서 몰라도 괜찮고 잊어버려도 괜찮다는 용기가 생겼다. 쉬는 시간이 있어야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잠을 못 자면 하루가 피곤하고 한 번에 과식하면 체한다.
중국어는 나에게 생소한 외국어다. 외국어를 언젠가는 공부하겠다던 계획을 천천히 실행하고 잠도 푹 자면서 여유를 부려도 괜찮다. 모르는 게 많고 알아도 입에서 술술 나오지 않는 중국어를 지금 멈추기는 아깝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익혀온 성조와 가족, 요일, 인사하기뿐만 아니라 비교 표현도 조금씩 할 수 있는데 지금 중국어 공부하기 어렵다고 멈추면 후회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친구에게 지금은 중국어 공부 그만두기 아깝지 않냐고 좀 더 해보자고 말했다. 내가 도망치고 싶을 때 친구가 조금 더 해보자고 격려해 줬던 것처럼.
*커버이미지는 삼청동의 MGFS100 갤러리 앞의 조형물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