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하려는 딸에게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아

by 김작가

딸이 건강하기를

딸이 평화롭기를

딸이 행복하기를

딸이 성장하기를


딸아, 첫돌 무렵부터 좋아하던 곰돌이 푸 인형으로 장난쳐 주면 언제나 웃음 짓는 네가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올해 대학을 졸업한 네가 이력서를 제출한 회사의 면접을 보고 합격 통지서를 받았어. 취업을 앞둔 딸은 고민이 많네. 공부를 좀 더 하는 쪽으로 방향 잡았으면서도 회사에 이력서를 내는 행위 자체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을까.

최종 합격 통지서를 받은 회사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딸에게는 오백 원짜리 동전을 던져서 결정해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엄마 마음도 싱숭생숭해서 너의 성장 과정을 돌이켜 본다.

대학 졸업이 다가올수록 진로를 고민하는 네가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말할 때 반대하지 않았어. 대학 이후의 학비를 엄마와 아빠가 대줄 수 없으니 장학금을 알아보라면서 말이야. 엄마와 아빠는 너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네 인생을 다 책임질 수가 없어.

너의 어린 시절 무엇이 너를 빛나게 할까를 고민하며 학원비를 무리하게 지출하기도 했어. 경제적 부담이 클수록 성과물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 네 미래를 저당 잡고 시켜야 할 것 같던 공부, 너를 드러나게 해 줄 것 같은 예체능 학원에 다니게 했어. 시류(時流)에 휩쓸려서.

좀 아쉬워. 3년 가까이 플롯 수업을 일주일에 한 번씩 했는데 그럴듯한 연주곡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플롯 수업을 그만둔 이후 연주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재미있지 않았나 봐. 플롯을 했더니 호흡이 길고 복식호흡이 가능하다니 다행이라고 여긴다.

내가 어렸을 때 악기를 배우지 못해서 너에게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 네가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악기 연주가 그런 시기를 지나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는 마음에 플롯 수업을 오랫동안 유지했었어.

해금 수업도 3년 넘게 했지. 플롯 수업 이후 네가 원해서 시작한 해금. 수업을 그만둔 이후에도 해금을 연주하던 모습을 보면 확실히 네가 관심 있었나 봐. 학원에 의뢰해서 샀던 해금에 문제가 있어서 여러 번 수리를 받아도 소리가 이상하지만. 너의 해금 연주가 맑은 소리를 내지 못해도 네가 해금에 대해서 좋은 기억을 갖는 것 같아서 만족한다.

수영은 하다 말기를 반복했어. 너의 건강을 위해서 진도와 상관없이 방학 기간에만 다니기도 했어. 코로나 시대를 맞아 사람들 마주하기가 어려울 때 네가 아쉬워한 일이 수영장 가는 거였어. 물에 들어가 움직이는 걸 싫어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바닷물에는 들어가기 싫다고 했는데 최근에 서핑에 관심을 보이는 걸 보니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화상영어를 시작한 지 8년이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던 영어학원에서 회화 위주로 수업해서 전화영어를 거쳐 화상영어를 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면서.

수학학원 다니기는 지금 생각해도 싫었다는데 고등학교에서 딱 한 번 수학 100점 맞았을 때 좋았다니까 공부와 관련해서 학원에 다녔던 일도 나쁘지만은 않은가 봐.

인생에 정답은 없더라. 너에게 이로울 줄 알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을 고집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너와 부딪쳐서 힘들었어. 그렇다고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도 없었어. 사회에서 적당히 섞여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내 마음대로 움직일 때도 있고 남 눈치 보면서 속도를 조절할 때도 있고.

신기하지,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면 주변과 조화를 이루기가 쉬워져.

내가 원하는 걸 모르고 주변에 반응하기는 일상을 지치게 해. 하지만 원하는 방향을 알면 지금 내 일상에서 무엇을 점검해야 할지 알게 돼. 일상의 소중한 순간을 만끽하지.

좋은 직장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려는 이유는 행복하고 싶은 거야. 좋은 사람 옆에 좋은 사람은 자석처럼 붙어. 지금 네가 좋은 사람으로 존재하면 너의 옆에 그런 사람들이 모여.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순탄하게 일이 풀려. 간혹 실타래가 엉켜도 좋은 사람들의 지혜가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게 돼.

월급이 많고 명함이 그럴듯하다고 근무조건이 안정되어 있지 않더라. 겉보기에 폼난다고 행복할 수 있지 않더라. 진짜 행복은 겉치장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오더라. 명품을 온몸에 휘감고 다니면 남들한테 잠시 자랑거리는 될 수 있어도 그뿐이야. 내면에서 나오는 기쁨이 있어야 행복이야.

착각했었어. 네가 어렸을 때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라고 말했던 적이 있어. 안정된 직장, 월급 많이 주는 직장, 명함이 그럴듯한 직장에서 네가 일하면 삶이 편안하지 않을까 여겼어. 주변이 완벽해야 하는 줄 착각했어.

엄마는 지금 행복해. 삶이 괴롭지 않아. 내가 편안하니까 주변도 온전하게 느껴져. 명품 가방보다 출근을 앞둔 딸과 제주에 가서 여유롭게 차 마시고 바닷가에서 멍 때리고 맛있는 음식 먹고 네가 가고 싶다는 오름에 갈 생각 하니까 이보다 더 완벽한 순간이 있을까 싶어.

행복을 누리고 사느냐 마느냐에 따라 삶의 만족도가 달라지더라. 궁극적인 삶의 방향이나 목표가 어떤 직장에 들어가느냐, 얼마나 비싼 집을 구매하느냐가 아니더라고.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관계와는 결별하고 나를 평안하게 만드는 지혜가 필요한 게 인생이더라고.

직장생활 경험 중요해. 너는 이제 경제적으로 독립할 때가 되었으니까. 경제활동은 진짜 어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발판이 되니까.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말 맞아. 그럼 두 번째 입사하는 직장은 중요하지 않을까? 한 직장에서 죽을 때까지 일하지 않아. 조건과 맥락에 따라서 이직하기도 해.

네가 원하던 공부를 더 하더라도 끝내는 경제활동을 하게 돼. 지금 직장생활을 시작하느냐 원하는 공부를 좀 더 하고 나서 경제활동을 시작하느냐의 차이야.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은 부모에게서 독립했다는 증거야. 네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하는 거야.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네가 이번에 회사에 입사하든 말든, 올해 원하는 대학원에 진학하든 말든, 나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네가 입사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는 것 같아서 제주에 여행 가자고 제안했어. 너는 머리가 복잡하다지만 직장에 다니면 평일에 여행 가기가 쉽지 않으니까. 얼마 전에 네가 제주에 있는 오름에 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서.

어떤 조직이든 경험해 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어. 지금 선택한 결과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 수 있어. 직장에 다닌다고 공부의 기회가 영영 없어지지 않아. 지금 너에게 열린 문을 밀고 들어가 봐도 괜찮아. 이쪽으로 가든 저쪽으로 가든 너의 길은 열려 있어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면 돼. 잘 모르겠으면 그냥 오백 원짜리 동전을 던져서 날개가 나오는 쪽으로 가봐도 괜찮아. 그 길이 가다가 막히면 유턴할 수도 있어. 지금은 안 보이는 새로운 길이 또 열릴 테니까.

딸아, 네가 지금 어느 쪽을 선택하든 너는 행복할 권리가 있어. 무엇을 선택하든지 너에게는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날개가 있음을 기억하자.

우리는 오늘 제주 여행을 떠날 가방을 꾸리자. 내일부터 3일 동안은 제주에서 행복 하자. 관광하러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고 한가해서 졸음이 올만큼 쉬자.

딸아, 너의 삶이 늘 건강하기를, 평화롭기를, 행복하기를, 성장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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