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루이 비뱅

나이 한 살을 더하며

by 김작가

나에게 꿈이 있었는지 헷갈린다. 가끔 그럴듯해 보이는 직업을 꿈이라고 말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이 나에게 기쁨을 주는지 모르는 채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10대 때 얼른 서른 살이 되고 싶었다. 서른 살이 되면 인생의 방향을 찾아서 뚜벅뚜벅 걸어가고 뭔가 이루는 줄 알았다. 막상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여전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 주변의 요구에 맞추려 애쓰며 살았다. 40대에는 내가 별 볼 일 없음을 인정하고 마음이 부대껴도 받아들일 일은 받아들이고 포기할 일은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히려 내 삶을 인정하고 어느 방향으로 걷고 있는지 조금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루이 비뱅’이라는 화가에 대한 책을 읽었다.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그림, 이야기가 담긴 것 같은 그림, 귀 기울이면 파리에 대해 조곤조곤 말해줄 것 같은 그림이 끌렸다.

루이 비뱅은 그림에 소질도 있고 관심도 있었으나 가정 형편상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 그런 환경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생전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어도 사후에는 꾸준히 미술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든 말든 꾸준히 그림을 그린 사실에 마음을 모아 존경을 표하고 싶다. 어쩌면 그의 그 태도가 작품을 통해 세상에 빛으로 남은 것 같다.


《루이 비뱅,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


루이 비뱅은 1861년 프랑스 보주주 에피날 아돌에서 태어나 1880년 파리 중앙 우체국에 취업했단다. 우체국에서 근무할 때 우체국 아트 클럽에서 전시한 적이 있고 재임 기간에 ‘프랑스 우편 지도 시리즈’로 교육공로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림은 정년퇴임 후에야 본격적으로 그렸다.

비뱅은 1889년부터 1936년까지 47년간 몽마르트르에서 생활했다. 가끔 자신의 그림들을 집 앞 전시장에 내놓곤 했는데 우연히 미술사학자이자 화상인 빌헬름 우데의 눈에 띄어 전시를 하게 된다. 참여자는 루이 비뱅 뿐만 아니라 앙리 루소, 세라핀 루이, 앙드레 보샹, 카미유 봉부아였다. 이들의 특징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늦은 나이에 미술에 입문한 사람들이다. 소박파라 불리는 이들은 생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자신의 스타일로 묵묵히 계속 그림을 그렸다.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태동에 영감을 주었던 앙리 루소는 사후에 초현실주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받는다. 안타깝게도 앙리 루소나 루이 비뱅은 세상에 알려질 무렵 죽음을 맞이했다. 루이 비뱅은 사후에 여러 차례 모마(뉴욕현대미술관)의 기획전에 초대되었고 모마, 테이트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화가에게 모마나 테이트 같은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는 일은 영광일 테니까 행복한 결말이다. 하지만 나는 일상에서 꾸준히 그림을 그린 아름다운 사람으로 루이 비뱅을 기억하고 싶다. 루이 비뱅이 뇌졸중으로 팔에 마비가 올 때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비뱅은 생활을 위해 우체부로 활동하면서도 그림에 대해 포기하지 않았다. 루브르 박물관 등에 소장된 그림을 보고 독학해서 자신만의 화풍을 창조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평생 그림 그리며 화가를 꿈꾸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다.

한 사람의 생애 중 굵직한 부분을 발췌하면 잘 살았군, 멋지군, 아름답군, 못났군, 찌질하군 하면서 금방 결론이 난다. 하지만 개별적 존재로 순간순간을 살아가다 보면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저 그 순간을 살아낼 뿐이다. 그 순간에 하나를 선택할 뿐이다. 그리고 묵묵히 그 선택에 책임질 뿐이다.

루이 비뱅은 그림을 그리기를 원했다. 생활을 위해 우체부로 정년퇴직할 때까지 일한 후 팔을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마음껏 그림을 그렸다. 세상의 인정보다 자신의 기쁨을 위해 그림을 그렸는지도 모른다.

나이 한 살을 또 맞이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이 나에게 기쁨을 주는지 조금씩 알아가면서 루이 비뱅 처럼 잘 살아낸 사람의 이야기가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세상의 인정 여부를 떠나 계속 그림을 그렸던 그 용기와 태도에 박수를 보낸다. 올해도 나에게는 맑은 날과 흐린 날이 섞이겠지만 바른 태도로 용기를 내야겠다.


* 이 글은《루이 비뱅,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를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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