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따와나선원에서
세 번째 템플스테이다.
나에게 생각의 전환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불편한 상황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다.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두 번 갔는데 이번에는 사찰의 프로그램에 맞춰 움직이는 참여형을 선택했다.
3시간 가까이 운전하고 제따와나선원에 도착하니 온몸이 아프다. 피곤할 때 느끼는 울렁거림과 삭신 쑤심, 턱이 벌어져 다물지 못하는 입. 나는 의도적으로 입을 다물고 숨 쉬려고 거친 호흡을 내뱉는다.
제따와나선원의 프로그램은 묵언을 기본으로 하고 수행 프로그램 중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선원에 도착하여 처음 한 일이 스마트폰 전원을 끄고 사무소에 제출했다. 나는 2인 1실을 배정받고 열쇠와 함께 초심자수행 일정표와 시설물 안내도, 공양 시간과 순서 및 설거지 방법 안내, 방 온수기 사용 방법 등의 안내가 적힌 종이를 받았다. 자세하게 안내함으로써 묵언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배정받은 방에서 짐을 정리하는데 누군가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온다.
“앗, 누가 계신 줄 몰랐어요.”
나와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는 분이 문을 열며 당황한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안녕하세요.”
습관적인 대화가 잠시 오간다. 이틀 동안 함께 할 사람이라 서로 통성명한다. 선원에서 묵언하라는 지침이 떠오른다.
“좋은 시간 되세요.”라고 서로를 지지하고 말을 마무리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대화를 지속하려는 습관이 있어서 순간순간 언어로 표현하지만 ‘묵언’하라는 지침이 있어서 조심한다. 점심 공양 시간에 말없이 식사하니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내가 먹는 음식으로 초점 맞춘다. 상추가 연하고 배추김치는 맛깔나고 애호박을 길고 가늘게 잘라서 안에 으깬 두부와 다진 채소를 넣어 부친 전은 고급지다.
매 프로그램 진행 시간 10분 전에 미리 모이라는 안내에 따라 첫째 날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법당으로 이동한다. 첫째 날에는 호흡 수행, 걷기 수행, 일상 수행의 기초적인 수행 방법과 반조(反照: 돌이켜 살펴봄)하는 법을 배우고 마음의 장애(탐욕, 성냄, 해태혼침)를 관찰하는 방법을 배운다. 해태혼침은 졸음, 무기력함, 게으름 등으로 나타난다. 해태혼침이 나타나는 두 가지 큰 원인은 지금 상태가 싫고 지루하고 허무하다고 느끼는 성냄과, 원하고 마음에 드는 상태를 즐기고 집착하는 탐욕 때문이다.
제따와나선원의 선원장인 일목 스님의 첫째 날 법문은 기초적인 수행 방법과 반조에 대한 것이다. 초심자수행을 신청했을 때 미리 보고 오라고 보내 준 영상의 내용과 비슷하다. 정념 스님이 수행 중 떠오르는 생각이 탐욕인지, 성냄인지, 해태혼침인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더 설명해 준다. 좌선의 방법과 걷기 명상을 위한 경행( 『불교』 좌선을 할 때에 피로를 풀고 졸음을 쫓기 위하여 일정한 곳을 천천히 거니는 일) 방법, 반조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첫째 날이지만 수행(명상) 시간은 길다. 좌선도 처음부터 40분, 50분이다.
졸음이 밀려온다. 몸이 몹시 피곤해서 견디기 힘들다. 내 몸이 힘듦을 수용하며 되도록 졸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간절하게 눕고 싶다. 일정이 늦어지며 20분이던 오후 울력(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일함) 시간이 5분이다. 풀을 뽑으며 내 속에서 어떤 느낌인지 살피라고 한다. 나른하고 멍한 채로 호미를 들고 풀을 뽑는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졸려도 몸을 움직인다. 마무리를 알리는 소리에 따라 작업을 멈춘다.
휴식 시간 40분이 주어진다. 선원은 오후 불식이지만 나는 먹거리를 준비했다. 쉽게 지치는 내 몸을 위해 끼니를 거르지 않으려고 한다. 방(재가자꾸띠)을 함께 쓰고 있는 도반이 먹거리를 많이 준비했다. 나도 누룽지를 준비했으나 도반이 나눠준 돌솥비빔밥을 식당(메따)에 가서 데워 먹는다.
저녁예불 시간을 맞추느라 식사 후 쉴 시간 없이 법당으로 이동한다. 불교 신자가 아닌 내가 종교적으로 불편하지 않을 만큼 예불 시간은 짧다. 스님이 삼배 방법과 법당에서 나갈 때 반배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바로 좌선 40분이다. 나는 저녁 시간에 호흡명상 두 번과 걷기 명상하며 오후와 마찬가지로 졸음이 온다. 다리와 허리가 몹시 아프다. 통증을 호소하며 눕고 싶은 욕구와 나른하고 졸린 해태혼침이 쉴 새 없이 일어난다. 몸이 아프니까 불편하다는 생각에 이어 내가 건강을 꿈꾸는 것이 삿된 의도가 될까 염려되어 말도 꺼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어난 생각에 ‘욕구’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호흡에 주의 모은다.
반조 시간에 명상하며 일어난 생각을 종이에 기록한다. 꿈꾸듯이 맥락 없어 보이는 알아차림도 있고 건강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조심하는 나의 태도에 안쓰럽기도 하다. 건강하고 싶은 욕구가 나를 절망으로 밀어뜨릴까 두려웠다. 건강은 마음대로 되지 않고 잦은 입원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곤 했다. 올해 8년 만에 응급실에 다녀왔지만, 나는 8년째 입원은 하지 않았다. 명상하는 도중 일어난 건강을 탐내지 못한다는 깨달음이, 어쩌면 나에게 건강에 대한 새로운 서사를 작성하기 위한 주춧돌인지도 모르겠다. 반조를 마무리하는 싱잉볼 소리가 난다. 기록을 멈추고 법당을 나선다.
밤하늘이 맑다.
묵언 속에서 각자의 속도대로 걷기 명상하며 숙소로 향한다. 보도블록 사이에서 풀이 자란다. 꽉 막혀서 빠져나갈 곳 없어 보이는 작은 공간을 비집고 나온 풀 한 포기에 잠시 눈이 머문다. 버거운 일상의 틈을 찾으려 템플스테이 하러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맑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이 따뜻하다. 명상하며 졸고 또 졸았어도 쉬고 있는 느낌이다.
숙소에서 도반은 글을 쓴다. 나는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휴식한다.
둘째 날 새벽 4시 30분, 방에 있는 알람 시계 소리에 잠이 깬다. 전날 밤 10시에 불을 껐으나 잠이 들지 않아 오래 뒤척인 탓에 몸이 천근만근이다. 새벽예불 시간에 맞춰 법당으로 이동한다. 삼배 후에 50분 좌선하고 반조한다.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몸이 힘들고 졸리다.
둘째 날에는 명상 도중 일어나는 생각이 탐욕인지, 성냄인지, 해태혼침인지 알아차리고 어떤 지혜를 활용하여 그것들을 버렸는지 알아차리게 한다. 나는 둘째 날 수행할 때 의자에 앉아 아픈 배에 손을 얹는다. 속의 울렁거림과 당김을 지켜보고 통증이 변하는 것을 관찰한다. 모든 것은 변하기에 무상하다는 지혜로 바라보니 몸 상태가 온전치 못한 것이 불편하지 않다. 다리가 아파서 쥐가 나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을 때는 어쨌든 이 수행 시간이 멈추면 다리를 뻗어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몸의 통증이 강렬하지 않을 때 나른하게 졸린 것에 대해서는 몸이 견딜만한 순간에 졸음도 사라지겠거니 했다.
둘째 날 수행은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수행과 두 차례 울력이 있고, 일목 스님과의 인터뷰가 있어서 질문하고 답을 구할 수 있다.
초심자수행 마지막 날인 셋째 날 새벽과 오전 수행할 때는 졸리지 않다. 생각의 종류가 무지개처럼 다양하게 펼쳐진다. 잡념이 많아 불편하다. ‘성냄’이라는 이름표를 붙인다. 얼굴이 익숙해진 도반들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잡념은 잡념일 뿐이라고, 무상하다고, 내게 해롭다고 지혜의 우산을 씌우지만, 자꾸 다른 생각이 떠올라 ‘언젠가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어루만진다. 주변과 연결되는 느낌, 행복감이 올라올 때는 모든 것은 변하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기억한다.
방을 정리하며 도반에게 책 한 권을 나눔 한다. 도반은 현미누룽지를 나눈다. 작은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연락처는 묻지 않는다. 다만 서로의 삶이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초심자수행의 마지막은 점심 공양이다. 공양 때마다 맛있는 음식으로 행복하다. 마지막에 나온 더덕구이는 너무 맛있어서 요리법을 묻고 싶다. 이박삼일 동안 수행에 참여하며 푹 쉬었다는 느낌을 극대화하는 요소가 공양 덕분이다. 생각, 통증, 졸음이 수없이 일어나도 묵언을 통해 그런 나와 만나고 고유의 질감이 살아있는 음식을 씹고 삼키며 평안하다. 그 음식에 온전히 머물러 쉼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잘 쉬고 갑니다.”라는 혼잣말로 인사하며 제따와나선원을 떠난다. 선원에 집 짓고 살고 있는 제비들도 때가 되면 가야 할 곳으로 떠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