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정 Sep 10. 2023

신변보호대상자는 도망칠 수가 없다.

자살 시도 그 이후의 일상 3

※신변보호 대상자 : 범죄신고 등과 관련하여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는 범죄피해자, 신고자, 목격자, 참고인 및 그 친족 등 (출처: 서울경찰청 홈페이지)

※농막 : 농사에 편리하도록 농장 가까이에 지은 간단한 집. (출처 : 농업용어사전/ 농촌진흥청)


신변보호를 요청하니 현관문에는 CCTV가, 엄마의 손목에는 워치가 새로 생겼다.

검은색의 칙칙한 것들이 우리를 지켜준다니. 제법 그 분위기가 삼엄하여 무거운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했다. 


워치는 경찰에 즉시신고가 가능한 기능이 있었고,

버튼을 누르면 5분 이내로 출동하였다. (그녀가 실수로 잘못 눌러서 실제로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


워치는 다른 스마트워치와 그 외향이 다르지 않았는데, 자살의 흔적을 일정 부분 가리는데 좋았다.


"이사를 하려는데요.. 자꾸 집 근처를 맴도니까- 그 사람 모르게 이사하고 싶어요."

"그러면 이사한 집 주소지를 가해자가 알게 되나요?"

엄마의 눈물 섞인 목소리와 대조적으로 내것은 언제나 건조했다.


그리고 내 질문보다 더 건조한 목소리로 돌아온 경찰의 응답, 

"네."

100m 이내 접근금지 명령을 내리려면 피해자의 집주소, 직장주소를 가해자에게 고지해야 하니 그렇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 사람 모르게 멀리멀리 도망가고 싶어 했다.

나는 그 금수가 세상으로부터 영원히 도망치길 바랐고.


가해자는 엄마의 뒤를 밟았다. 살금살금 쥐새끼같이

베란다 창 밖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엄마의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우연을 가장하며 마주치며-

집 밖을 나서려면 하나밖에 없는 골목길을 지키고 서있었다. 수문장이 따로 없었다. 


"나는 그냥 은행 가려던 길이었어요! 그런데 길을 잘못 들어서 유턴한 거지 따라다닌 게 아니라니깐요? 허, 참!"

엄마의 출근길을 쫓던 가해자의 그럴듯한 명분에 별다른 조치가 취해질 리 만무했다.


여청수사대의 담당수사관은 어두운 낯빛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000씨(가해자)가 본래 거주하던 시골집은 농막이기 때문에 거주지로 인정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피해자 근처에 새로 집을 구했다고 해서 피해자를 괴롭히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가 없고요."


가해자는 엄마 집 근처에 월세방을 얻었단다. 

본인은 자기 집 근처를 돌아다닌 거지, 엄마 집 근처를 돌아다닌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가해자가 또 쫓아올 건데 이사를 하는 의미가 있냬 없냬 하며 고민하는 동안

엄마에 대한 헛소문은 세상 밖으로 널리 퍼졌다.


엄마의 가족과 친척, 단짝친구와 동창, 고객과 회사동료, 심지어는 이웃사촌에게도 엄마의 사진과 모욕적인 말들이 돌았다.


생애동안 부지런했던 가해자의 성실함이 가히 돋보였다.

그 성실함은 10년 전에는 엄마를 반하게 만들었고, 지금은 엄마를 찌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이라는 이름의 아기고양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