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이름 짓기
박스를 열자 박스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풍겼다.
그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작은 생명은 고개를 위로 들어 작은 빛이 도는 회색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각도에 따라서는 파란빛이 돌기도 하는 그 눈이 참 예뻤다.
처음 마주하는 순간- 알았다. 이 가벼운 생명이 내 가슴에 무겁게 자리할 거라는 것을.
스트릿 출신의 흔해빠진 코리아숏헤어,
아파트 단지 내 분리수거장을 어슬렁거리는 병들고 야윈 어린 고양이들.
나는 이따금씩 내 그림자를 쫓는 그들에게 사료나 간식을 챙겨주기도 하였지만 그들에게 어떠한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그저 곧 사라질 생명들에게 나와의 만남이(정확히는 맛본 적 없는 맛있는 간식이) 생애 중 어쩌다가 만난 기분 좋은 날이 되기를 바랐을 뿐.
내게는 그들을 책임질 의무도,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 중 누군가는 내게 '나비'가 되었다가 '야옹이'가 되었다가 사라졌다.
이름을 지어주는 순간 Anything에서 Something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이 작고 가벼운 고양이는 '사랑이'가 되었다. 사는 생애 동안 사랑만 받고 살으라는 뜻이었다.
사랑이라고 부르면 '깍'하고 톤 높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뽈뽈뽈 다가오는 사랑이는 도무지 사랑하지 않으래야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사랑이를 끔찍하게 아끼면서 현관문 밖에서 스러지는 무수한 생명을 외면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냈다.
수백만이 넘는 수없이 많은 별들 속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예요.
- 어린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