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치즈'라는 고양이 ㅡ 4

우당탕

우리 집식구들은 엄마, 아빠, 오빠, 언니, 크림이 오빠, 나, 또랑이 이렇게 대 식구가 되었다.

가을에 이사 왔기에 엄마는 감나무, 대추나무, 매실나무, 복분자, 앵두나무 주로 유실수 나무를 욕심껏 심었다. 아마 주렁주렁 열리는 것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ㅎㅎ 열매 맺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시골생활 처음이라 엄마는 식물에 대해 모르는듯하다.

첫겨울은 무척 추웠다. 눈도 많이 오니 엄마의 출퇴근이 특히 힘들었다. 아빠 차는 4륜인데 엄마 차는 2륜이라 그런 듯...

힘든 겨울을 보내고 쨍한 봄이 다시 왔다.

따뜻한 봄에 과실나무들은 새싹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도 집 안에만 있다가 다시 밖으로 나다니기 시작했다.

역시 좋다. 산으로도 가보고 꽃들도 보고 나비도 따라다니고 즐거움의 순간들이었다.

엄마는 텃밭도 가꿨다.
따뜻한 봄은 생명이 넘쳐 났다. 첫 생산의 기쁨도 맛을 봤다.

얼마 후 언니는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며 용감하게 출발하는 모습은 참 당당해 보였다. 짐은 산더미다. 여긴 여름이지만 그곳은 겨울이라 두꺼운 옷이 많이 필요했을 거다.

어학연수 6개월을 하고 시험을 본 다음 통과가 되면 학교 수업을 받기 시작하기로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물설고 낯선 곳에서 잘 견뎌내야 할 텐데...

언니가 나를 무척 좋아했는데 먼 곳으로 가니 눈물이 났다. 잘~ 다녀와.

산골 생활 1년쯤 될 때까지 엄마는 무척 바빴다. 친구들이 놀러 오고, 아파트 지인들도 놀러 왔다. 다들 하룻밤 자고 가다 보니 나는 낯선 사람들 모습에 놀라 침대 위에 소변을 봐 버렸다. 놀란 엄마는 얼른 침대 시트를 갈았다. 그런데 또 실례를 해 버렸다.

아고... 엄마는 너무 황당해했다. 두 번의 실수로 난 다락에 갇혔다. ㅜㅜ

또랑이랑 다락에서 다다다 뛰어다녔다. 물과 음식은 줬지만 한 곳에 있는 건 싫다.


아래를 살짝 내려다봐도 무섭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니 내려가려 해도 겁이 나서 다시 올라와 버렸다.

엄마 친구 한 분은 나보다 더 나를 무서워했다. 뭐 살결에 송충이가 기어 다니는 기분이란다. 아고...

또랑이는 아무렇지 않게 잘 다녔다. 나보다 백배 더 용감했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처럼 무서운 게 없었다.

손님들이 뜸해질 즘 한가해진 틈을 타 엄마가 약간 외로워 보였다.


언니가 외국으로 간 뒤 집안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은 언니였는데 멀리 가버렸으니 대화 상대가 없어 외로울듯했다.

난, 밥 줄 때 외에는 다가가 애교를 떠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았기에 엄마에게 위로는 못됐다.

조용히 한구석에 앉아있는 걸 더 선호했다. 그냥 눈으로 지그시 바라보며 응원을 했다.

밖에 나가면 또랑이는 숲으로 사라졌고 한참 뒤 쥐를 물고 와 마당에 내팽개쳐 놓았다. 아고, 징그러워 유~~~

크림이 오빠도 놀래 도망가 버린다.

우리 집에서 꼬맹이가 제일 세다.

아침나절 산책길에 뒷산을 올라가면 아빠 뒤를 졸졸 따라간다. 목줄 없이도 난 잘 따라다니지만 크림이 오빠는 목줄 없으면 저 아랫동네로 내려가 버려 어쩔 수 없이 목줄을 해야 했다.

물론 또랑이는 지 가고 싶은데 마음대로 갔다가 온다.

자유로운 영혼....

밥그릇도 자기 거 다 먹고도 내 밥그릇을 넘나 본다. 이젠 크림이 오빠도 진다. 막 덤비니 기가 차나 보다. 냥이의 앞 펀치는 매우 셌다.

우리 식구들은 언니가 없으니 우리들에게 더 애정을 쏟아붓는듯했다.

힘들게 일하고 집에 오면 가족끼리 서로 반가워하기보다 우리에게 코맹맹이 소리로 "치~즈 잘 있었어?" 꼭 껴안아준다. "크림아~~~" 또는 "또랑아"

하이톤의 반가움은 여기서 끝, 어른들끼리 반가운 표정은 없다.

우리가 없었으면 어찌했을꼬...
삭막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그저 공짜로 밥을 얻어먹는 것이 아니다. 위로를 해 주는 귀여운 존재들인 것이다.

이런 연결 고리가 되어 그나마 안심이다.

서로 위하며 의지하며 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ㅡ 계속



감사합니다 ~~~~^^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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