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상담자일 때는 마치 걸음마 배우는 아이처럼 상담이 긴장되고 두렵다.
(내 기준에서 초심상담자는 경력 10년 아래를 의미하는데 특히 경력 2, 3년은 왕초심상담자라 생각한다.)
왕초심상담자여서 상담 케이스가 대부분 새로워서 상담 내용을 따라가고 파악하는 것에도 에너지가 참 많이 들었다.
상담도 힘겨운데 함께 근무하는 사람(상담자가 아닌 다른 직원들)과 갈등이 있으면 너무 힘들었다.
16년 상담 경험을 돌아보면 은근하게 누적되는 힘겨움은 군에서 상담했을 때이고 날것으로 힘들었던 것은 경찰서에서 상담할 때였다.
함께 근무하는 여경들은 내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가 심해 그들이 병리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만 제정신인 것 같아서 더 고통스러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기계적으로 출근 준비를 했지만 마음은 눈 뜨기 전부터 가기 싫었다.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급기야 스트레스로 대상포진에 걸렸다.
내 고통이 피부로 올라온 듯했다.
억울했다.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너희들은 다 미쳤다고.
왜 나를 괴롭히냐고.
사실, 그들에게 화를 내고 싶은 것보다 회피하고 싶었다.
퇴사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규정적인 면이 있어서 근무 계약 기간을 파기한다는 것도 불편했다.
특히 그들 때문에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것은 지는 것 같아서 더 싫었다.
안 갈 수도 없고 가기는 싫고.
그야말로 안절부절못했다.
점심시간에 대충 점심을 먹고 경찰서 밖을 나와야 오후 시간을 겨우 버틸 수 있었다.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듯 너무 괴로워서 개인분석을 시작했다.
(개인분석이란 심리상담사가 받는 심리상담을 말한다.)
현재도 개인상담 비용이 시간 대비 단가가 높지만 10여 년 전에도 비용이 꽤 나갔다.
당시에는 초심상담자로 월급도 많지 않아서 개인상담을 받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아무 상담자에게 개인분석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직면시키지 않으며 수용적이고 따뜻하며 상담 비용도 높지 않은 상담자에게 상담받고 싶었다.
이런 상담자가 어디에 있을까?
급한 대로 석사 때 교수님에게 전화를 했다.
빨리 상담을 받고 싶은데 상담자가 따뜻하고 수용적이어야 하며 상담 시간은 퇴근 후여야 하고 상담 장소가 멀어서도 안 되며 비용도 비싸면 안 된다고.
내 말을 들은 전화기 너무 교수님은 당황한 듯 몇 초간 말이 없었다.
“그럼 저와 상담을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석사 때 강의를 듣기는 했지만 교수님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친절한 분이라 생각했기에 나는 교수님에게 개인분석을 받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내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할 상담자는 거의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석사 제자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 너무도 당당하게 상담자를 찾아달라고 떼써서 교수님은 참 당황하셨을 것 같다.
그때는 교수님 입장을 헤아리기에는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쓱 지나갔지만 개인분석을 끝내고 나서 두고두고 감사했다.
일주일에 한 번, 50분 받는 개인분석에 기대에 일 년을 버텼다.
개인분석 시간에 억울함, 분노, 슬픔을 마음에서 퍼 올려 버렸다.
깊은 우물같이 어두운 고통은 길어 올려도 화수분처럼 다시 채워졌다.
퍼서 버리고 다시 채워지면 또 길어 올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계약 종료가 되었다.
개인분석도 종결을 앞두게 되었는데 더 받고 싶었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그만해야 했다.
상담 종결을 상담사가 먼저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내가 먼저 상담 종결을 언급했다.
상담 종결을 입 밖으로 꺼낼 때 몸이 떨리고 울음이 나왔다.
먹튀 하는 것 같고 더 상담받고 싶은데 돈이 없어 종결해야 하는 사실이 슬프기도 하고 상담을 그만두고 다시 고통스러울까 두렵기도 했다.
교수님은, 상담사는 이런 나를 토닥거려 줬다.
“다시 안 볼 사이도 아닌데.”
라며 내 등을 쓸어주었다.
참았던 울음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처럼 엉엉, 꺽꺽 울었다.
상담을 종결하고 현실은 내 두려움과 달랐다.
위태로울 때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유지를 했다.
개인분석 후 교수님을 다시 뵙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가 힘들 때마다
“다시 안 볼 사이도 아닌데.”
이 말이 떠올랐다.
그러면 두둑하게 밥을 먹은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졌다.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자란 사람이 밥 힘을 느끼며 살아가듯이.
어느덧 초심상담자를 벗어난 나는 내담자들에게 밥 힘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내가 받은 것을 조금 수정해서 종결 상담에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종결은 잠정 종결이에요. 다시 안 볼 사이도 아니니까요.”
내 말이 내담자가 힘들 때 생각나기를 바란다.
돈 없고 배고플 때 주머니에서 문득 발견되는 사탕이나 캐러멜처럼.
달달함으로 주린 배를 달랠 수 있기를.
상담은 종결했지만 내담자의 마음속에 따뜻한 관계가 유지되기를.
고통 속에서 관계 끈을 붙잡고 버티기를 바란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하기를, 기억나기를.
16년 동안 만났던 모든 내담자들이 언제나 몸과 마음이 따뜻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