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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공포영화 같이 보는 사람

by 마음햇볕



첫 상담에서 다뤄야 하는 것은 어떤 내담자나 거의 비슷하다.

내담자가 상담을 신청한 이유와 상담 후 바라는 것, 즉 상담 기대를 묻는다.

상담 회기에 따라 상담 목표 달성 정도는 달라지기에 상담 기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단기상담에서(12회기 이내 상담을 의미함) 다룰 수 있는 주제는 회기가 짧기에 한정적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다룰 주제를 제한하지는 않는다.

짧은 회기를 자신 이해 출발의 워밍업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럼에도 상담 기대는 첫 상담에서 상담자가 내담자와 나눌 때 도움이 된다.

내담자에게 여러 번의 상담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 있어서 기대 또한 클 가능성이 있다.

만약 내담자의 상담 기대가 근본적 원인의 해소라면 단기상담에서 이루기는 매우 희박하다.

그렇기에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상담에서 해소 가능한 정도를 안내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상담자와 내담자의 솔직한 소통 경험이 된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환상을 심어주지 않는다.

초심상담자는 내담자의 상담 기대를 다룰 때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

내담자가 상담에, 상담자에게 실망할까 염려되기도 한다.

상담자 자신도 모르게 내담자에게 비현실적인 희망을 줄 때가 있다.

고통받는 내담자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담자 자신 문제가 투영될 때 생긴다.

상담자 내면에서 “구원자 환상”‘을 일으키는 무엇인가가 움직인 것이다.

상담자가 내담자와 현실적인 상담 기대를 검토하지 못하면 내담자는 상담자를 이상화했다가 상담 과정을 거치며 상담자에게 실망하게 된다.

어쩌면 이상화하는 순간 실망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놀이동산 자이드롭처럼 올라가는 이유는 떨어지기 위함이다.

이상화와 평가절하는 쌍둥이다.

이상화 속에 평가절하가 만두 속처럼 들어 있고 평가절하 속에 이상화가 들어있다.

상담자는 이상화에 대한 유혹을 인식해야 한다.

무의식에 두면 조절할 수 없다.

의식을 한다는 것은 이상함과 불편감을 느끼는 것이다.

상담자가 상담을 끝내고 뭔가 찝찝하다면, 뭐지? 싶으면 상담자 안에서 역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냥 넘겨버리면 상담은 망한다.

이런 상황을 아카데믹하게 표현한다면 “상담자 역전이 실패”라고 하겠다.



상담자 역전이를 제거하면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하다.

역전이는 심리 역동 중 하나이기 때문에 제거하는 것은 어렵고 다만 이해해서 조절하는 것이 최선이다.

상담은 내담자 전이와 상담자 역전이의 댄스라고 말할 수 있다.

상담자는 춤출 준비를 하고 상담에 들어가야 한다.

내담자와 추는 춤은 고통의 댄스지만 춤을 춰야 내담자가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고 반고통의 반복을 멈출 수 있다.

내담자가 상담자나 고통의 댄스는 힘들다.

그래서 때로 춤을 추지 않고 “’그냥, 저절로, 빨리” 해결되기를 바랄 때도 있다.

넓게 본다면 그냥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조차 전이와 역전이가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담전문가는 자신의 핵심감정(역전이를 일으키는 주원인)을 인식하기 위해 “수련”을 한다.

상담사에 따라 핵심감정을 인식할 수 있는 수련 정도는 다르다.

초심상담사는 평균 3~5년 수련을 하는데 넓게 보면 10년 안쪽의 상담사는 초심상담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수련은 지속될수록 상담 전문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

내 경우도 상담사로 번 돈의 많은 부분을 수련에 사용했다.

그런데 아깝지 않은 이유는 수련이 직업적으로 도움이 되고 개인적 삶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수련 과정은 공인된 상담 자격증을 딸 때 많이 도움이 된다.

수련 없이 상담 자격증을 따는 것은 거의 어렵기도 하고 의미도 없다.

상담사는 수련을 통해 내담자와 춤을 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수련을 열심히 하면 핵심감정을 만났을 때 상담사는 타격이 없나?

핵심감정에 매몰되지 않을 뿐 여전히 영향을 받는다.

씁쓸하고 서글플 때도 있다.

하지만 수련을 통해 핵심감정을 온전히 깨달으면 핵심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마치 호흡명상 중에 다른 생각을 따라갔다가 호흡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과 비슷하다.

갔다가 그저 돌아온다.

산만한 생각, 후회, 안타까움, 슬픔, 억울함, 외로움, 분노, 조급함, 혼란, 불안, 우울에 갔다가 마음 가운데로 돌아올 수 있다.

내담자들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면 늪에 빠진 것처럼 헤어 나오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자신이 두려워한다는 것도 모를 때도 있다.

두려움을 부정하려고 화를 내기도 한다.

부정적 감정의 대표로 화를 뽑아서 고통을 느낄 때마다 화를 낸다.

두렵고 무서운데 화를 내면 더욱 고립되고 고통스러워진다.

원하지 않는 공포영화를 끝없이 봐야 하는 벌을 받는 것 같다.

그래서 더 힘들고 억울하고 무섭고 슬픈데 화를 내면 사람들은 가까이 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내 고통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없다고 확신이 들어 화가 더 나고 더 고통스러운 굴레에 들어간다.

때로 굴레를 멈추고 벗어나려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 한다.

버튼 누르듯 눌러서 자신의 삶을 꺼버리고 싶어 한다.

이것이야말로 극단의 분노이다.

상담사는 내담자의 분노를 번역하는 역할을 한다.

혼자 끝없는 공포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내담자 옆에 앉는다.

상담사가 공포영화를 끝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함께 한다.

상담사나 내담자가 사람은 자신만의 공포영화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공포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왜 공포영화를 계속 보게 되는지 이해하게 된 상담사가 내담자와 함께 한다.

내담자의 공포영화를 상담사가 함께 보면서 귀신이나 괴물 등장에 대해 미리 알려주기도 한다.

과거 어떤 상황에서 귀신과 괴물을 만났는지 내담자에게 물어보고 알게 된 지점을 상담사는 내담자 대신 기억을 한다.



두려움에 얼어붙은 내담자 옆에서 작은 손난로를 건네주며 상담사가 함께 한다.

손난로나 상담사의 안내가 처음에는 그리 유용하지 않다.

그래도 함께 공포영화를 보노라면 존재 자체가 위안이 된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모든 것이다.

내담자가 공포영화를 보게 된 최초의 사건은 고통 속에 혼자 버려졌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서워서 소리쳐도, 울어도 반응을 받지 못했다.

내담자는 어쩔 수 없이 고통에서 혼자 도망치거나 무섭지 않은 척 화를 내거나 기절했다.

혼자라는 것 자체가 공포다.

상담사가 건네는 안내와 손난로가 정답이나 마법이면 좋겠지만 아니다.

그것은 상담사도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당신과 함께 하겠다는 메시지다.

내담자가 스스로 생의 버튼을 끄지 않고 삶을 이해하고 충만한 순간을 누릴 때까지 옆에 있겠다는 상담사의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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