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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목표는 변화가 아니다

by 마음햇볕




상담실을 방문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 것 같냐고 질문하면 상담사 포함 “변화”라고 종종 답한다.

해가 바뀌어 16년 상담을 하고 있는 내 경험에 비춰보면 변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변화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내담자들은 상담 사전 질문지에 대부분 “달라지기를 원한다. 변하고 싶다. 바뀌고 싶다. 고치고 싶다.”라고 많이 적기 때문이다.

상담 사전 질문지를 읽으면 문자로는 내담자가 “변화”하길 바란다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첫 상담에서 나는 상담 사전 질문지에 적은 내담자의 바람을 다시 물어본다.

상담을 받고 나면 어떻게 되길 바라는지.

내담자에게 질문을 할 때


“어떻게 변할 것 같아요?”


라고 묻지 않는다.

만약 변화라는 단어를 상담자가 사용한다면 이미 상담자 마음 안에 내담자가 상담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고 전제하는 것이니까.

변해야 한다는 것은 현재 자신이 뭔가 문제가 있고 틀렸거나 망가졌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게 된다.


자신을 부정하고 비난하는 출발은 균형 잡힌 시선이 아니다.


그래서 온전히 내담자의 상담 기대를 묻기 위해 열린 질문으로 시작한다.

어떤 전제도 하지 않는다.

내담자가 상담 사전 질문지에 변화를 의미하는 단어를 적었더라도 말이다.

열린 질문을 하면 내담자는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고치고 싶다고 말하는 내담자에게 언제부터 고치고 싶었는지 고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은지 물어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과거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그랬던 것 같다고 말한다.

어쨌든 자신을 “잘못된” 사람으로 인식한다.

문제 덩어리로 여긴다.

그렇기에 고치지 않으면, 변하지 않으면 관계에서 배척당해서 고립되고 비난받고 혼자서 고통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계에서 아웃사이더, 배척당했던 기억,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경험, 상처받은 경험이 있으면 자신을 문제 덩어리로 여기는 것을 불변의 진리처럼 느낀다.

내가 문제니까 관계에서 사랑받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논리다.




이때 상담사는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만약, 나는 문제가 없는데도 고통을 당했다면 어떨 것 같냐고.

이 말을 들은 내담자들은 혼란스러워하거나 놀라거나 슬퍼하거나 한다.

살면서 한 번도 자신이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대부분 말한다.

그래서 내가 문제가 없는데 고통을 겪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해본 것이다.

어떤 내담자는 반대로 질문을 하기도 한다.


“제가 문제가 없다면 왜 고통을 당했을까요?”


이 질문은 고통을 당했으니 내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이유가 없이 고통을 당했다는 것은 억울하고 더 고통스럽다.

그렇기에 우리는 알 수 없는 고통을 겪을 때 원인을 찾는다.

외부에서 찾을 수 없으면 내면에서 찾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이다.

내가 문제라서 고통스럽다면 나만 변하면 되니까.

남이나 외부가 문제라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때 무력함이 생긴다.

내가 문제라면 내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다.

흐릿하지만 희망을 품을 수 있다.

타인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라고 설정하면 타인을 “나쁜 것”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남, 타인이 나쁘지 않다는 무의식적 바람은 타인에 대해 이미 나쁨, 부정적인 것에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방어하기 위해 부정적인 것을 자신에게 투사할 때 자신을 문제 덩어리로 인식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문제로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더 고통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원래 마음은 아주 어렸을 때 자신도 모르게 생겼고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서 성인이 되어 기억을 잘 못한다.

원래 마음은 잊어버리고 “나는 문제 덩어리야. 나를 고쳐야 해.”만 남는다.

상담에서 자신이 문제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 대부분은 알고 있다.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

의식에서는 “나는 문제니까 고쳐야 해.”라고 하지만 상담을 하면 변화가 아닌 원망과 미움이 먼저 나온다.

자신이 문제라고 강하게 믿을 때 상담에서 조언과 변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알려줘도 실행하지 않는다.

변화할 방법을 알아도 의심하고 더 완벽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변화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런 자신을 문제의 증거로 여기며 자신을 더 문제로 생각하는 악순환을 유지한다.

상담에서 변화가 핵심이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란 말처럼 알게 된 모든 방법은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더 의미심장한 것은 상담에 오는 많은 사람들은 고통의 원인과 변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알아도 안 되기 때문에 온다.

아는데 안 되니까 더욱 자신이 문제라고 확신한다.

자신이 아는 방법은 하찮은 것이라고 여긴다.

내가 아는 방법은 나쁘고 권위자, 전문가가 말해주는 것만 정답일 거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다양한 내담자를 만나 상담하면서 내가 하는 일은 정말 자신이 문제가 맞는지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나는 왜 이토록 달라지고 싶은가?


변화를 해야 한다는 전제 속에 깔려 있는 고통을 발견해야 한다.

나를 많이 고치고 싶을수록,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할수록 고통이 많을 수 있다.


나는 왜 이토록 고통스러울까?


상담 목표는 고통에서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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