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 대부분은 개인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싶어 한다.
나 역시 상담센터 오픈을 꿈꿔왔다.
상담센터를 개업하고 싶었던 이유는 몇 개 된다.
상담을 제대로 하고 싶다.
제대로란 상담에 도움 되는 물리적 환경에서 상담이 제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이른다.
상담사가 아닌 사람은 당연한 얘기를 원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기관에서 진행되는 상담 시스템은 제약이 많다.
학교, 경찰서, 군에서 상담을 할 때 불필요한 행정, 상담 자체가 부수적으로 여겨지는 분위기, 심리역동을 다루기보다는 사건 해결 위주의 진행 등으로 답답했다.
직업인으로서는 급여가 전문성에 비해 낮아서 울적했다.
특히 군에서 상담관으로 근무할 때 간부들은 이렇게 말했다.
“심리전문가시니까.”
그런데 말뿐인 것 같았다.
상담관의 복지나 안전에 관심은 느낄 수 없었고 구색을 맞추는 기분이었다.
상담은 열심히 하는데 수입은 늘지 않고 상담사로 성장도 멈춘 것 같았다.
이러다가 정년이 되면 끝나버리겠지.
기관에서 상담을 하다가 정년 뒤 일반 상담을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원하지 않았지만 익숙해진 방식에 다양한 심리역동을 다루는 것이 낯설고 두려워진다.
퇴직 후 나이 때문에 사설상담센터 객원상담사로 취업도 어렵다.
물론 기관에서 근무할 때 상담사로서 자신만의 강점을 키워나가고 사설상담센터 상담 경력을 쌓는다면 달라진다.
하지만 전일제로 기관에서 근무하면서 퇴근 뒤나 주말에 공부를 하거나 투잡을 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리저리 치이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센터나 차릴까?’
나이만 많고 강점은 흐리고 자존심은 상하니 오너가 돼 보자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으로 센터를 차리면, 망한다.
현실에서 밀려나서 거미줄 치고 누군가는 걸리겠지 하는 심정으로 센터를 오픈하면 눈먼 몇 명은 걸리겠지만 결국 센터는 정말 거미줄을 치게 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상담을 하고 싶었고 믿을 수 있는 상담센터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열심히 상담한 만큼 수입도 내고 싶었다.
지루하고 재미없지만 안락했던 군상담을 그만두고 상담센터를 차리고자 했을 때 제일 먼저 어디에 차릴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어느 지역에 상담센터를 차려야 할까?
문득 “강남”이 떠올랐다.
“강남”이란 것이 행정구역상 강남인지 심리적 강남인지 모호했다.
둘 다 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인터넷으로 강남 지역 사무실 월세 매물을 훑어봤다.
평수에 비해 비쌌다.
군상담을 그만두고 받은 적은 퇴직금이 전부였던 내게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짜증이 나면서 동시에
‘그런데 왜 강남에 차려야 해?’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경기 북부에 살아서 강남까지 가려면 2시간은 잡아야 했다.
대중교통은 강남까지 그나마 넉넉하게 2시간이지만 자동차로 가면 가늠이 어렵다.
빠를 수도 있지만 막히면 기약이 없다.
어쨌든 왕복 3, 4시간을 길에서 버릴 것이 뻔했다.
정신이 들었다.
왜 강남에 센터를 차릴 생각이 먼저 들었던 걸까?
서울에서도 강남.
내가 제비도 아니면서.
생각해 보면 상담 수련을 받을 때 주로 강남에서 받았다.
수련 지도자들(수퍼바이저)이 거의 강남에 있었기 때문이다.
강남에서 개인분석과 교육, 사례 참관 등을 할 때 너무 힘들었다.
고층빌딩을 지나서 주차도 되지 않는 곳으로 갈 때마다 짜증이 나고 억울했다.
내 시간과 돈을 내는데 힘까지 들여서 가야 하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부러웠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강남에서 뭘 한다는 것은 특별한 느낌이 든다.
있어 보인다.
물론 강남 교통이 발달되어 접근성이 좋은 것도 있다.
그런데 애초에 왜 강남은 교통이 발달된 걸까?
경기 북부는 달랑 1호선 하나뿐이어서 아비규환인데.
버스도 서울에 비해 적고 간격도 넓어서 짐짝처럼 실려서 다니는데.
아무리 요구해도 경기 북부는 지하철이 늘어나지 않는다.
강남은 알아서 지하철을 놔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강남에 가고 싶었나 보다.
윤택하게 살고 싶었나 보다.
기를 쓰고 살지 않고 여유 있게, 알아서 지하철 깔아주는 곳에서 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마음을 인정하는 대신에 화가 났던 것 같다.
강남이 떠올랐던 이유를 알게 되니 강남이 아니어도 될 것 같았다.
물론 돈도 없었지만.
돈이 있어도 강남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강남 때문이 아니라 너무 애쓰고 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나는 왜 “너무” 애를 쓰는 것일까?
애쓰지 않는 삶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내 인생은 출생부터 노력이란 운명에 묶여 있었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여기면서도 억울했던 것 같다.
운명이 뭐 이런가 억울했다.
상담사는 자신을 아는 만큼 상담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담 수련은 자신을 알아 가는 과정이다.
나는 애쓰고 사는 것이 내 운명 같으면서도 울화가 치미는 나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거저 살고 싶은, 거지 근성 같은 내 마음이 있는데 그렇게 살지 못했던 나를 발견했다.
왜냐면 나는 여러 형제 중 존재감 없는 딸이어서 거저 살지 못했다.
돌봄을 흡족하게 받지 못해서 슬펐지만 슬퍼하는 대신 노력했다.
스스로 챙기고 능력을 키워 존재감을 어필하고 싶었다.
그러면 나를 누군가는 돌아봐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노력이란 열차를 탔던 것이다.
목적지는 관심과 사랑이었는데 너무 오래 열차를 타다 보니 열차를 타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렸다.
사실, 관심과 사랑에 도달하고 싶다는 것을 모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관심과 사랑은 현실에 없는 환상 같은 거라서 희망을 품는 것이 불안과 고통처럼 느껴졌을 수 있다.
거저 살고 싶은 내 마음이 강남을 미워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강남은 죄가 없다.
무엇도 죄가 없다.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던 나도 존재감을 느끼게 관심과 사랑을 주지 못했던 부모도 잘못이 없다.
각자 고립되어 자신의 고통과 씨름해야 했던 우리가 있을 뿐이다.
애쓰고 살 수밖에 없었던 내가 안쓰럽다.
노력의 열차에서 완전히 내리지는 못했지만 간혹 정차한다.
휴게소에 들러 우동을 먹고 호두과자를 산다.
마치 여행 가는 사람처럼 그저 시간이 흘러가게 둔다.
다시 열차에 오를 때 즐겁게 흘러갔던 시간을 생각한다.
즐거움이 거저 생겼다.
열차가 움직임을 멈출 때 내가 그토록 원했던 관심과 사랑에 도착하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토록 내게 관심과 사랑이 있고 내 존재를 선명하게 느꼈으니.
운명은 각질처럼 떨어져 나가고 삶은 아기 피부처럼 말랑말랑하다.
강남에 가지 않아도 사람들과 가깝게, 믿을만한 상담센터로 존재하고 싶다.
“나의 해방일지”란 드라마에서 서울을 노른자로, 경기도를 흰자로 표현했다.
노른자에 사는 남성과 흰자에 사는 여성이 만나서 사랑을 한다.
온전한 달걀이 된다.
흰자에 산다는 것, 노른자에 산다는 것은 개인의 역사 속에서 생생한 의미를 갖는다.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이유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어느 것도 운명이 될 수는 없다.
흰자나 노른자나 달걀의 부분일 뿐이며 두 부분은 병아리가 된다.
흰자에 살거나 노른자에 살거나 번데기가 우화 하듯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