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은 하지 말아야 했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때문에 난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얼결에 나온 말은 마음속 말일 수도 있고 엉뚱한 단어일 때도 있다.
공동 과제인 팀풀을 팀킬이라 말한 대학생, 가게로 들어온 손님에게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한 종업원.
실수라 할 수 있지만 묘하게 자신이 바라는 마음이 들어있다.
사회적 관계에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기 어려워 의식적으로 억제한다.
속마음을 드러내면 관계에 타격이 생길까 염려되고 수용받지 못할까 걱정한다.
또는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상황에 비해 타인이 너무 밉고 싫다.
마음은 찝찝하지만 당장 앞에 있는 타인을 미워한다.
또는 자신도 모르게 타인을 실제와 다르게 너무 칭찬하기도 한다.
지나친 칭찬은 비난을 숨기려는 시도일 수 있다.
칭찬하지 않으면 비난하고 화를 낼 것 같아서 영혼 없는 칭찬을 멈추기 어렵다.
부정적인 감정은 없는 사람인 것처럼 항상 밝기만 하다.
그 밝음은 연기자처럼 능숙하지만 실제는 아니어서 깊이가 얕다.
어두운 밤에 불을 잔뜩 켜서 억지로 낮을 만든 것처럼.
언제나 밝음은 어느 순간 피곤을 몰고 온다.
드라마나 영화 세트장처럼 현실을 흉내 낼뿐이다.
마음을 누르는 이유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상담에서 방어기제라 부르는 억압, 억제가 마음을 누른다는 뜻이다.
억압과 억제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둘 다 누른다는 의미나 억압은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미성숙한 방어기제다.
자신도 모르게 부정하는 것이다.
억제는 자신이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성숙한 방어기제라고 부른다.
말실수는 억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자꾸 말실수를 하다 보면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될 수 있다.
공동 과제를 할 때 숟가락만 얹으려 하는 사람 때문에 고생했던 경험이 있는 대학생은 공동 과제가 싫을 수 있다.
새로운 공동 과제를 해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팀킬”이라고 말하고 난 뒤 깜짝 놀란다.
과거 공동 과제 경험이 시간이 흘러도 자신에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면 공동 과제가 너무 싫었던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자신을 이해하게 되면 공동 과제에 스트레스받는 자신을 수용할 수 있고 수용하면 자기 비난은 멈춘다.
자기 비난을 멈출 때 마음에는 여유 공간이 생겨 공동 과제에 숟가락을 얹는 팀원이 있어도 견딜만해진다.
프로이트는 말실수를 포함해 실수는 해프닝이 아니라고 했다.
실수는 무의식이 드러나는 방식이다.
억압되어 나도 모르는 마음이 있는데 이 마음이 넘쳐흐른 것이다.
흘러넘친 마음에 대해 궁금증, 호기심을 갖는 것은 고통의 밀도를 낮추는 좋은 기회가 된다.
실수가 많다면 흘러넘치는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데 실수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믿는,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늘, 항상 그랬는데 뭐가 문제예요?”
그렇다.
당연한 것, 항상, 늘 그랬던 것에 궁금증이 필요하다.
언제부터 당연해졌던 것일까?
당연한 것도 최초 출발이 있다.
상담에서는 원마음이라고 부른다.
원래 마음이란 뜻이다.
억압하게 된 원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원래 마음을 알게 되면 이해하게 되고 수용하고 비난은 멈추고 그다음은?
억제로 환승하게 된다.
억압의 반대로 가는 것이 아니다.
알고 억제하게 된다.
현실의 누군가 때문에 속상한 만큼 쓰리다.
“너무” 속상한 것은 과거 경험이 더해졌다는 것을 알고 과거 고통은 억제한다.
억제한 과거 고통의 기원을 알게 될 때까지 차근차근 조사해 나간다.
자신이 무척, 너무, 엄청 고통스러울 때 늘, 항상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잘못 태어났다고 당연하게 드는 생각에 도전해야 한다.
어떤 상황이나 대상에게 반복해서 느끼는 고통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반복을 통해, 반복된 실수는 고통에서 벗어날 기회인 것이다.
일상에서 말을 할 때 염두에 두면 도움이 되는 단어는
“무척, 너무, 엄청, 당연히, 늘, 항상”이다.
이 단어들은 과거 경험을 끌고 오거나 의식하지 못하도록 장막을 친다.
혼란스러운 요즘에 “무척, 너무, 엄청, 당연히, 늘, 항상”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겉말, 속말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사회나 개인이나 원래 마음을 찾는다면 이해와 수용이 일어나고 비난이 멈춰 성숙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요즘 혼란스런 사회 때문에 무척 마음이 힘들지만 항상 그렇듯 열심히 상담을 한다.
너무 상담을 많이 하는가 싶지만 늘 그랬듯이 신규 상담 케이스를 받는다.
이런 나를 당연하게 여기는 가족에게 때로 엄청 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