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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이 싫다

by 마음햇볕




언제부터였을까?

기억을 더듬어 내려가면 초등 저학년 무렵이었다.

많은 식구가 닭 한 마리를 가지고 먹으려면 대부분 닭백숙이다.

엄마가 압력솥에 닭을 꾸겨 넣는다.

다리가 긴 것으로 보아 토종닭이었던 것 같다.

털이 뽑힌 껍질은 소름 돋은 것 마냥 오돌토돌하다.

닭이 죽기 전에는 피부라고 불렸을 텐데 음식이 되니 껍질이 되었다.

껍질은 색과 표면이 균일하지 않았다.

여기저기가 노르스름하거나 하얗고 누런색이다.

생전에 상처가 있었던 곳인지 딱지처럼 보이는 곳도 있었다.

닭 껍질을 보는데 닭이 어떻게 살았을까 상상이 되었다.


흙과 먹이를 쪼았을 닭.

푸드덕 날개 짓을 했을 닭.


뽀얀 알을 품었을 닭이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대가리가 잘린 채로 음식이 되어 압력솥에 담겨 있다.

생명이 있던 닭과 생명이 사라진 닭은 극명한 대조가 되어 몸이 떨렸다.

물에 빠진 시체를 보는 기분이었다.

압력솥 김이 빠진 뒤 엄마가 뚜껑을 열었다.

증기 기관의 김처럼 한 번에 길게 김이 위로 올라간다.

백숙 특유의 냄새가 공간에 퍼진다.

닭은 껍질조차 헐벗게 되고 사지는 퍼져 있다.

엄마는 닭을 더 해체해서 가족들 그릇에 각각 분배한다.

안 봐도 아는 분배인데 아빠와 오빠 그릇에 닭다리가 담긴다.

그다음은 딸들 그릇에 가슴살이 담기고 엄마는 흐트러진 살점 몇 개를 긁어모아 자신의 그릇에 담는다.

나는 내 몫의 닭가슴살을 엄마 그릇에 옮긴다.

엄마는 그저 내를 착한 딸로 여기는 것 같다.

엄마 눈빛이 살짝 따뜻해진다.

그리고는 다시 내 그릇에 닭 살점을 돌려준다.

나는 한사코 살점을 엄마 그릇에 넣는다.

엄마는 할 수 없다는 듯 숟갈을 든다.

나는 멀건 국물을 휘젓다가 결국 배추김치와 밥만 먹는다.

식사가 끝나면 밥상에는 앙상한 닭 뼈만 남는다.




전생이 있다면 닭과 내가 뭔 관계가 있었는지 유독 닭을 먹기 힘들었다.

닭요리만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조류를 싫어하는 편이다.

그러니 닭을 좋아해서 닭요리를 싫어하게 된 것은 아니다.

온전한 형태가 익숙한 닭이 요리되어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을 보는 게 힘들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어느 부위인지 직관적으로 가늠되지 않지만 닭은 알 수 있다.

그래서 닭고기를 보면 자꾸 살아있던 닭이 떠올라 먹기 어려웠던 것이다.

내 어린 시절에는 닭튀김은 특별한 음식이었다.

치킨이라 부르는 음식은 축하할 일이 있거나 부모가 기분이 아주 좋을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나는 백숙이나 치킨이나 자꾸 닭의 생전 모습이 떠올라 먹기 어려웠다.

그들의 살을 씹노라면 그들이 먹었던 흙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경직된 그들의 다리를 서로 먹겠다는 가족을 보면 슬펐다.

비건도 아니면서 닭을 싫어하는 것은 나이가 든 지금도 마찬가지다.




군상담관을 할 때 종종 닭장차를 보게 되었다.

군상담은 기동상담, 즉 출장상담이 대부분이어서 군부대로 운전해 가야 했다.

군부대를 가는 국도에서 종종 동물을 실어 나르는 차들을 만난다.

특히 여름에 닭을 실은 차를 많이 보게 된다.

큰 트럭 뒤에 닭장 그대로 얹힌 닭들.

닭장도 작아서 마치 레고 블록을 쌓아놓은 것 같다.

닭장은 20층이 넘어 보이게 쌓여서 실려간다.

닭장 아래위로 닭들은 헥헥 고개를 내민다.

어떤 닭은 이미 체념한 듯 웅크리고 앉아있다.

닭장 사이로 고개를 내민 닭 모가지는 털이 듬성듬성 빠져 있다.

자기들끼리 싸운 것인지 병이 든 것인지 아니면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고 고개를 자꾸 내밀다가 털이 빠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들의 얼굴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얼굴이다.

몇 분 후면 그들은 음식이 되리라.

국도를 가다 보면 유명한 닭 브랜드 공장이 있다.

그곳을 지나갈 때면 누린내가 났다.

죽고 털 뽑히고 무게에 따라 봉지에 담기겠지.

여름이면 닭 공장의 누린내가 끊이지 않았다.

머리가 띵하다.

복날 군부대 식당에서는 작은 닭 수십 마리를 큰 솥에 넣고 큰 나무 주걱으로 저으며 끓인다.

엉덩이가 위로 향한 수십 마리 닭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펄펄 김이 나는 물 위에 둥둥 떠서 돌아간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현기증을 느끼며 식당을 나온다.

연병장 모래 냄새가 묻어있는 바람 때문에 현기증이 지속된다.

큰 솥에 닭이 있는 것인지 병사들이, 내가 있는지 헷갈린다.

닭장은 내가 사는 아파트와 닮았다.

내가 털 빠진 모가지를 창밖으로 내민다.

욕심과 질투와 비난과 공격과 분노로 끓이는 국물 속에 우리가 둥둥 떠오른다.




순살 치킨으로 주문하면서 나는 닭을 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흙냄새를 바람에서 맡을 때 닭살이 돋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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